김병재 작가는 ‘헐리우드 키드’였다. 중·고등학생 시절 수업이 끝나면 학교 근처 불광극장과 양지극장을 매일 찾았다. 평일에는 한 편, 주말에는 두세 편을 몰아볼 정도로 영화에 빠져 지냈다. 생업을 가져야 했기에 1988년부터 매일경제신문, 문화일보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지만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쉬이 식지 않았다. 영화학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문화일보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고, 2004년 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 일하며 영화업계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좋은 동기들 덕분에 일했던” YTN미디어를 거쳐 2015년 이데일리에서 정년퇴직을 한 이후에도 그의 시선은 줄곧 문화·예술 쪽으로 향했다. 다만 이번엔 영화가 아닌 연극, 희곡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 작가는 “기자 생활을 27년 가까이 하면서 결국 나의 경쟁력은 글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나리오보다는 희곡이 낫겠다 싶었다. 영화보단 연극이 제작비가 적으니 실패 확률이 낮을 것 같았고, 한편으론 연극이 어떤 장르보다도 관객과 가장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그는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 몇 달에 걸쳐 작품을 쓰고 난 후엔 평소 존경하던 선배인 정중헌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에게 원고를 보여주길 반복했다. 첫 작품엔 난색을 표했던 정 이사장은 다행히 두 번째 작품에선 재미있다며 아는 연출자에게 원고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원고를 받은 연출자는 대번에 연출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극단 대학로극장의 창단 30주년 기념공연 시리즈를 맡은 이우천 연출자였다. 김 작가는 “그때가 지난해 2월이었다”며 “연출자가 워낙 바빠 연말이 다 돼서야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작가는 연습실에 별로 나타나지 않는데 다른 기자들에게 ‘선배 우리가 정말 이래?’라는 소릴 듣는 게 겁나서 개입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 ‘부장들’은 신문사 편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다. 기사 마감 10분 전, 세상을 뒤집을 만한 특종의 기사화를 두고 기자들이 벌이는 논쟁을 긴박감 있게 풀어낸 내용이었다. 김 작가는 “첫 작품도, 연극으로 올라간 ‘부장들’도, 지난해 또 한편 써냈던 극본도 모두 언론사 얘기”라며 “언론사 3부작이다. 내 얘기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쓸 수 있었던 소재지만 한편으론 기자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 희곡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기자 하면 ‘기레기’를 연상하는 대중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회유를 받으면 흔들리고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기자들은 사실을 쫓고 사회 정의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고 싶었다. 김 작가는 “일부러 기자를 근엄하고 반듯한 사람들이 아닌 술 먹고 늦게 들어갔다 간신히 나온 사람들, 피곤에, 또 기사 발제 고민에 찌든 사람들로 표현했다”며 “일종의 마당극처럼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도록 하면서도 신문사 생리, 조직문화, 내부 갈등을 담고자 했다. 또 갈등 속에서도 결국 가치관의 차이일 뿐 누구 하나 악당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부터 29일까지 총 14회 올라간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100석도 안 되는 작은 공연장이었지만 매번 북적였고 마지막 공연에선 일부 관객들을 돌려보내야했다. 올해 재공연도 예정됐다. 김 작가는 “기자 얘기라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공연을 통해 그 가능성을 봤다는 점에서 가장 기뻤다”며 “몇몇 분들은 틀은 유지하되 내용은 조금씩 바꿀 수 있다며 확장 가능성도 얘기해주시더라. 죽은 연극이 아니고 살아있는 연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무적이었다”고 했다.
김 작가의 올해 목표는 부장들 재공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다른 두 개의 희곡도 적당한 시기에 연극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김 작가는 “이쪽 업계가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곳이라 텃세도 적지 않다. 조용히 글 쓰고 술 마시고 살고 있다”며 “아는 연극하는 분에게 ‘10년만 대학로에서 놀다 갈게’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큰 욕심 안 가지고 쭉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