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향한 '전략적 봉쇄소송' 멈취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조국의 독립을 위한 열정의 정신, 강한 대한민국, 행복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길을 만들어가겠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광복절에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인터넷에서는 엉뚱한 논란이 벌어졌다. 나 원내대표가 대한민국을 ‘대일민국’이라고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지만 KBS는 이를 자사 메인뉴스인 <뉴스9>에 보도했다.


문제는 나 원내대표의 대응이었다. KBS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나 원내대표 측은 “기사를 내려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였음에도 이를 무시”했고 이는 “나 원내대표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있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송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비슷한 내용을 보도한 다른 인터넷 매체에도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불거진 아들의 연구 제1 저자 등록 의혹 보도와 IRB(의학연구심의윤리위원회) 미승인으로 입상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줄 소송을 이어갔다. 관련 뉴스를 보도했던 기자는 의원실 측으로부터 “허위 사실이니 기사를 내리라”는 말을 들었다며 ‘겁박’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소송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법적 근거의 타당성을 따지기보다는 비판적 목소리를 차단하고 후속보도를 위축시키기 위한 ‘입막음 소송’ 말이다.


비단 나 원내대표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소송 남발은 우리 정치권의 습관이 된 듯하다. 올해 초엔 손혜원 의원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한 SBS 기자 9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사가 아닌 기자 개인을 겨냥한 것은 전형적인 괴롭히기 작전이다. 당시에도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공직자로서 처신에 대한 의혹에 대해 언론사와의 소송전으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악의적 보도나 오보로 피해를 입었다면 언론사가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 원내대표와 손 의원을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는 소송할 권리가 있다. 앞의 사례 모두 보도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정부기관은 얼마든지 기자회견을 자청해 문제의 보도에 대해 직접 반론하고 비난할 수 있다. 나 원내대표도, 손 의원도 그렇게 했다. 그런 권력을 쥔 정치인의 소송은 분명 언론 자유를 위축시킨다. 조금이라도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은 아예 피해버리는 자기검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기자 3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2.2%는 ‘공인에 대해 취재할 때 소송에 대한 부담감으로 보도가 꺼려진다’고 답했다. 또 절반가량인 52.1%는 ‘보도 후에 상대방으로부터 고소하겠다는 말을 듣게 되면 후속보도를 자제하게 된다’고 했다. 일단 걸고 보자는 식의, 기자 개인을 향한 괴롭히기 식의 ‘전략적 봉쇄소송’이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감시견(Watch Dog)이 소송을 두려워하게 된다면 좋아할 사람은 누구일까? 기자가 위축되어 권력 비판을 꺼려한다면 이득을 얻는 이는 누구일까? 나 원내대표의 소송은 해당 보도 이상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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