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야구 선수처럼

[스페셜리스트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국제적 저변이 약하다는 이유로 야구가 올림픽에선 찬밥 신세다. 2024 파리 올림픽에도 야구가 빠진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나라가 야구를 하긴 한다. 축구라면 죽고 못사는 유럽까지 야구는 퍼져있다. 이탈리아나 영국처럼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가 많은 나라를 비롯해 체코,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 등에도 야구 리그가 있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도 참가한다. 물론 인기는 없다.


이탈리아는 3부리그 축구 선수도 연봉 1억원이 넘는다. 축구 선수와 결혼을 꿈꾸는 미녀도 줄 섰다. 그런데 굳이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3년 전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알렉스 마에스트리가 그런 경우다. 스포트라이트와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길 대신 적막한 길을 가려는 사람들의 속내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한국 아이스하키 선수의 삶은 유럽의 야구 선수와 닮았다. 정규리그는커녕 국가대표 경기가 열려도 관중 300명 모으기가 쉽지 않다. ‘야농축배(야구·농구·축구·배구)’ 4대 종목에 밀려 별 관심을 못받지만, 세계적으론 인기 스포츠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아이스하키로 밥벌이하는 사람은 500명 남짓. 소꿉친구와 결혼한 것처럼 곁눈질 안하고 빙판의 퍽(puck)만 보는 이들이다.


조민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아이스하키의 올림픽 첫 골을 넣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한국의 월드컵 첫 골을 넣었던 박창선과 달리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민호는 지금 국내 실업팀 안양 한라의 주장이다. 씩 웃으면 앞니 세 개가 없고, 무릎 부상과 뇌졸중 후유증을 달고 산다. 오른손목엔 칼날에 베인 흉터가 5cm 넘게 있다. 7년 전 상대 팀 스케이트날에 동맥이 끊겼던 흔적이다. 최근 만난 그는 “아이스하키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면서 “40대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키 스틱을 잡은지 햇수로 24년째인데 운동이 지겨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누가 뭐라든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꿈을 선택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로 다져진 사람들에겐 기품이 흐른다. 김연아 이전에도 여자 피겨계엔 소냐 헤니,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 같은 스타들이 있었다. 김연아의 영향력은 마땅한 훈련장이 없어 놀이공원 아이스링크에서 연습하면서도 꿈을 위해 달렸던 뚝심에서 나온다. 문경 두메산골에서 흘린 땀으로 남자 근대5종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전웅태, 만 40세 나이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여자 카약 1인승 500m)을 따낸 이순자 등도 마찬가지다. 박수가 있든 없든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 우려내는 감동이 있다.


어쩌면 우리 일상이야말로 인기 없는 스포츠다. 매일 아등바등 경쟁하는 나날이지만, 지켜보는 관중은 없다. 그러건말건 2019 시즌을 “여기선 내가 최고”라는 선수의 자부심으로 뛰어보면 어떨까. 산뜻하게 달리기 좋은 봄이 코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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