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악의 정치 추문에 맞선 촛불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에 부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171명은 지난 3일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야당이 탄핵을 강행하면 장을 지지겠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증거도 있는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여당의원 29명을 끌어와 국회의원 200명을 채워야 한다. 새누리당의 비박의원들 40명은 흔들리는 갈대 같다. 박 대통령의 제3차 담화에 탄핵 참여를 철회했다가 3일 촛불민심에 놀라 다시 탄핵으로 돌아섰다. 촛불민심은 11월에는 ‘하야하라’나 ‘퇴진하라’였으나, 3일에는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를 탄핵하라”라며 훨씬 강경했다.


‘탄핵 주간’이 시작되는 5일 일부 언론에서는 ‘친박’도 탄핵 가결로 투표할 것이라도 보도했다. ‘탄핵 낙관론’이 확산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손에 자신의 뜻을 맡겨놓은 95~96%의 유권자들은 불안불안 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은 4~5%다. 대통령은 이미 민심에서 탄핵됐다. 민심을 아주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탄핵을 찬성하는 여론이 70% 이상이니, 210명의 국회의원이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29명이 부족하다. 유권자의 뜻을 대의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1인 헌법기관’이라며 ‘정치적 자율성’을 더 강조하는 탓이다. ‘국회해산’과 같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토요 촛불시위’는 지난달 12일 100만명을 넘은 뒤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 번도 줄지 않았다. 그래도 소설가 이문열씨는 “100만명이 탄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고, “광화문에 나오지 않은 4900만명은 생각이 다르다”는 발언도 있다. 이들에게는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 교수의 일갈이 제격이다. “그자들은 피검사 할 때 제 피를 몽땅 뽑아놓고 검사하나 물어봐!”


100만명 아니 232만명의 평화적 촛불을 비아냥대고 폄하하는 그들이 절대 모르는 것이 있다. 상상 속의 ‘100만 대군’을 눈과 몸으로 체감한 사람들은 이문열씨 등의 머리로 계산한 음험한 발언에 흔들릴 수가 없다. 요즘 관광업계에서 유행하는 ‘체험’ 덕분이다. 헌법 제21조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를 만끽하고,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2항을 실감한다.


사람들이 ‘꺼지지 않는’ LED 초 등을 정성스레 준비해서 광화문에 100만명 이상 모이려면 ‘의무’나 ‘분노’만으로는 어렵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공자도 좋아서 하는 일은 못 말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에 사는 지인은 한국의 ‘단군 이래 최대의 정치스캔들’에 분개하면서도 “촛불시위가 크리스마스를 환영하는 축제처럼 보인다”고 흥분했다. ‘촛불 파도타기’ 등이 아름답고 환상적이라 관광 수출상품이란다. 사실 매주 토요일 촛불시위는 축제다.


1980년대 유행 단어로 ‘대동(大同)’이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 1.큰 세력이 합동함. 2.온 세상이 번영하여 화평하게 됨. 3.조금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같음 등이다. 토요일마다 광화문에서 거대한 대동의 희망을 본다. 유모차를 타고 나온 젖먹이, 젊은 부부, 흰 머리의 할아버지, 넥타이 부대, 고시족, 중·고등학생, 제주도 농민과 외국인까지 대동의 힘과 실체를 체험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대동의 실체가 희미했다. 불완전한 한국 민주주의에서 1987년 체제 극복이 과제였다면 촛불시위로 이미 극복했다. 제도권이 촛불의 희망을 수렴할 때다. 그러니 9일 서울 여의도를 둘러쌀 촛불이 횃불로 돌변하지 않도록 국회가 좋은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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