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무관심, 농부를 위한 나라는 없다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서울 종로구 수성동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아름답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지난 4일 수성동 계곡을 걸었는데 쏟아지는 물과 물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계곡은 바짝 말라 회색 바위가 흉하게 드러났다. 중부지방을 덮친 100여년 만의 극심한 가을 가뭄의 현장이었다.


올해 중부지방에 봄 가뭄이 심각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21일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가뭄 피해지역을 방문해 소방호수로 논에 물을 댄 일이 있었다. 그 후로 다행히 태풍이 와 비가 쏟아지고 짧은 장마가 시작하면서 그럭저럭 봄 가뭄이 해갈됐고 농촌의 모내기도 잘 마무리 됐다.


한반도는 ‘태종우(太宗雨)’라는 존재가 있을 정도로 가뭄이 심한 지역이다. 태종우는 음력 5월10일인 조선 태종의 기일(忌日)이나 그 전후로 내리는 비를 부르는 이름이다. 양력으로 하면 6월 초나 중순쯤이 된다. 모내기철에 찾아오는 봄 가뭄에 늘 마음을 태우던 태종은 임종을 앞두고 “가뭄이 바야흐로 심하니 내가 죽어 혼이 있다면 이날 비가 오게 하겠다”고 유언했는데 이후 비가 내려 태종우라 불렀다. 측우기가 세계 최초로 조선에서 만들어진 이유도 가뭄 탓이었을 것이다.


전근대인 조선에서 가뭄은 그저 자연현상이 아니라 왕이 부덕하고 민심이 이반한 탓에 일어나는 변고였기 때문에 왕은 가뭄 앞에서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농업 국가에서 봄철 가뭄은 모내기를 놓치면 한 해 쌀농사를 망치는 것이니 경제·정치적 변동과도 깊이 연결됐다. 그러니 농업국가에서 치수는 그냥 치수가 아니라 왕권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전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진행할 때 한국이 물부족 국가라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고, 일부에서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은 한반도가 여름철을 제외하고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이라는 점을 대체로 알고 있었던 탓이다. 연간 강수량이 1200mm 안팎인데 여름철에 전체 강수량의 최대 3분의 2가 내리는 지역이 한반도다.


가뭄과 홍수를 막는 등의 다목적댐이 건설되고 관계수로가 완성되면서 하늘에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천수답에서도 벗어났고, 밭농사는 물론 논농사를 짓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가뭄이 오면 전국민이 걱정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오래된 관념이 작용하기도 했고, 20~30년 전만 해도 도시인의 대부분이 농부의 자식들인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농촌과 도시의 유대는 2000년대 쯤에서 대충 끝난 것 같다. 유권자인 농부가 전체 인구의 7% 수준으로 떨어진 탓일까. 농민을 위한 나라는 이제 없는 것일까.


중부지방에 100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보령댐의 저수율이 22.5%로 떨어지고, 소양강댐과 충주댐 역시 저수율이 40% 초반으로 훌쩍 떨어졌는데, 이를 걱정하는 기사를 중앙언론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100년은 과장이니 기록으로 말하라고? 강원도는 1966년 기상관측 이래 49년 만에, 충청북도는 1973년 기상관측 이래 42년 만에 최저 강수량을 기록했다. 바닥을 드러내는 낮은 저수율은 올 겨울 눈이 많이 내리지 않으면 내년 모내기를 걱정할 처지가 아닌가 싶다.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이미 제한급수를 실시하는데 가뭄이 겨울까지 이어지면 제한급수는 수도권까지 확대될 수 있다.


수돗물을 틀면 물이 꽐꽐 쏟아지는 도시에서 가뭄은 등산하기 좋은 날이 계속되거나, 행사하기 좋은 날, 빨래하기 좋은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중부권의 극심한 가뭄 소식에 정부나 정치권 모두 관심이 없어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 중에 가뭄으로 텃밭농사를 망친 ‘도시농부 6년차’가 중부지역 농민의 타는 목마름을 대변해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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