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눈가리개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모바일 눈가리개(Mobile blinder)’라는 표현이 있다. 계속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가리킨다. 마트의 계산대 앞에 줄을 서있을 때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도,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도, 모바일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듯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가 떠오른다. 말은 눈이 옆쪽에 있어서 시야가 넓다. 그래서 경주마에 눈가리개를 씌워주지 않으면 옆이나 뒤에서 뛰는 다른 말이 보이게 되어 주의가 산만해지고 겁을 먹기도 한다. 경주마의 시야를 좁게 만들어 목표 지점만 바라보며 달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눈가리개다.


물론 경주마의 눈가리개와 모바일 눈가리개는 다르다. 전자는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로 씌우는 것이지만, 후자는 ‘산만한 인터넷 세상’에 스스로 빠지는 것이다. ‘산만함에 집중’하는 세상이라니, 흥미롭다.


스마트 기기 액정 속의 인터넷 세상은 그렇듯 산만하다. 정적인 특징을 갖는 전통적인 의미의 책이나 신문, 잡지, 방송과는 달리 그 안에서는 지루할 틈이 없다. 잠시도 인간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네이버의 뉴스와 콘텐츠, 페이스북의 친구들 동향, 흥미로운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곳곳에 존재하는 링크와 클릭을 유혹하는 광고…. 사람들의 ‘관심(Attention)’을 끌기 위해 스마트 기기의 화면은 쉬지 않고 자신을 봐달라며 아우성친다.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 해도 화면에 빠지지 않고 버티기가 쉽지 않다.


이 ‘모바일 눈가리개’를 한 사람들의 증가는 우리 생활 이곳저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트의 계산대 근처에 쌓아 놓고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다 잡지나 껌, 초콜릿 등을 사던 고객들이 지금은 그 물건 대신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트뿐이랴. 당연히 미디어 분야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버즈피드(Buzzfeed), 서카(Circa) 등 새로운 콘셉트를 추구하는 매체들의 부상을 가져왔다. 뉴욕타임스가 ‘혁신보고서’에서 새로운 경쟁자로 지목한 뉴스 벤처기업들이다. ‘독자’와 ‘기사’에 대해 그들은 기존의 신문이나 방송과 다르게 생각한다. ‘풍요롭지만 산만한’ 인터넷에 익숙해져 있고,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에 빠져 있는 독자를 상정해 콘텐츠를 만든다. 깊게 생각하며 읽거나 시청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볍게 빨리 훑어보려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니, 기사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도 불편하지 않게 볼 수 있도록 대개 짧게 만든다. 장문의 보도나 심층 해설 보다는 잠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화젯거리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주로 기존 콘텐츠들을 요약하거나 말랑말랑하게 재가공(큐레이션)하고, 소셜네트워크에서 공유하며, 모바일로 승부한다. 독자와 기사에 대한 생각, 기사를 만들고 유통하는 문법 자체를 바꾼 것이다. 그 결과 ‘OO하는 7가지 방법’ 같은 ‘리스티클’(리스트(목록)+아티클(기사))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 페이스북 등에 공유되며 널리 퍼진다. 그들은 그렇게 ‘모바일 눈가리개’를 한 고객의 ‘욕구’에 철저하게 맞춰주었고, 그게 통했다. 


이제 기존 미디어들은 다수 사람의 관심에 ‘부응’해 짧고 흥미로운 연성 콘텐츠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다시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더욱 심층적인 기사를 제공할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전자로 사람들을 끌어들인 뒤 후자로 승부할 것인가. 


‘모바일 눈가리개’를 쓰고 ‘산만함에 집중’하고 있는 인터넷 시대의 사람들…. 기존 미디어 입장에서는 아쉽기도 하고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들이 미디어의 독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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