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은 없다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처음으로 조지 레이코프란 인지언어심리학자를 접한 건 2000년도 중후반 쯤이었다. 그가 책에서 제시한 ‘프레임’ 이론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같은 제목으로 지식채널e 한 편을 만들기까지 했다.


물론 ‘프레임’이란 말을 그 책에서 처음 접한 건 아니었다. 정치적 이슈가 어떤 프레임으로 제시되어야 어느 정당에게 유리한지에 대한 류의 기사는 그 이전에도 자주 보곤 했고 특정 정치세력이 해당 이슈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포장하는 일종의 ‘말장난’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는데 웬 걸, 조지 레이코프가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건 그러한 말장난 기법(?)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체계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의 뇌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개의 사고체계를 기본적으로 모두 내재하고 있으며, 두 사고체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다른 하나를 억제해서) 보수적으로 혹은 진보적으로 생각(판단)을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이 처음엔 다소 비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으면서 내가 그런 느낌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쉽게 말해 나는 어떠한 언어로 사람들을 홀릴(?)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면, 그는 사람들이 언어에 홀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맛집’ 정보를 찾았던 것이고, 조지 레이코프는 혀가 무언가를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레임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쟁은 여전히 누가 더 ‘말장난’을 잘하냐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의 사고체계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저 ‘네이밍’에 대한 고민만 난무한다. 특히 이런 일은 새정치민주연합(구 민주당)에 흔히 발생한다. 


예를 들어 2012대선 이후 새정치연합이 나름 열심히 홍보했던 게 ‘을지로 위원회’였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갑을 관계’를 따와 만든(네이밍 한) 이름이었다. 결과적으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일각에선 그 이유를 ‘기울어진 언론 지형’으로 돌렸다. 하지만 언론지형 탓만을 하기엔 같은 언론 상황 속에서도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던 ‘무상 급식’ 논란이 겹친다. 둘은 도대체 어떠한 차이가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을지로 위원회’는 특정 사고체계와 연결되지 못한 반면, ‘무상 급식’은 특정 사고체계와 성공적으로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상 급식이 연결된 ‘특정 사고체계’가 민주당에 대해 사람들 머릿속에 연결된 사고체계였던 것이다. 그 사고체계란 당연히 보수적 사고체계가 아닌 진보적 사고체계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진보적 사고체계를 강화하는 의제가 선거의 쟁점이 되었을 때 민주당은 많은 표를 얻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보적 의제는 사람들 머릿속의 진보적 사고체계를 강화하고, 그럴 때 사람은 보수적 사고체계와 연결된 한나라당보다 진보적 사고체계가 연결된 민주당을 떠올리게 되는 식이다. 


이렇게 말하면 새정치연합 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소위 ‘중도층 공략’에 대해 의문이 생기게 된다. 중도층을 잡으려면 현재 위치보다 소위 ‘우클릭’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조지 레이코프는 그 중도층조차 보수와 진보의 중간적 사고체계가 아닌 둘 중 하나의 사고체계를 사용하며 다만 사안에 따라 이쪽 저쪽을 번갈아 사용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중도(중간층)처럼 보이는 유권자들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가치관을 둘 다 가지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적용하는 가치를 달리 하는 이중 개념주의자일 뿐이다.”


‘이중개념주의자’. 한나라당, 그리고 지금의 새누리당이 매번 ‘무늬만 진보인 척’하면서도 표를 얻고 민주당, 지금의 새정치연합이 진짜 우클릭을 하면서도 표를 까먹는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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