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재발한 '재벌총수 리스크'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1.13 14: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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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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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열리는 전경련의 올해 마지막 회장단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썰렁할 전망이다. 상당수 그룹 총수들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참석이 어려워 ‘반쪽회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SK와 한화는 총수가 배임 또는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이다. 동양의 총수는 사기성 기업어음 및 회사채 발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포스코 회장은 정부의 사퇴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STX의 총수는 경영실패로 쫓겨났다. 금호아시아나는 4년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다. 한진·두산·동부·동국제강 등은 부실(징후) 그룹으로 분류돼 ‘제 코가 석자’다.
전경련 회장단의 우울한 현실은 한국경제의 ‘재벌총수 리스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경련 회장단이 아닌 그룹 중에서도 총수의 경영실패나 불법행위로 위기에 처한 재벌들이 여럿이다.
전경련 회장까지 지낸 효성의 조석래 회장은 수천억원의 탈세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CJ, 태광, LIG의 총수들도 배임·횡령·탈세 혐의가 드러났다. 웅진과 대한전선은 총수의 경영실패로 위기에 빠졌다. 15년 전 외환위기 때 외부차입에 의존한 무모한 사업확장으로 30대 그룹의 절반이 쓰러졌다. 당시가 1차 ‘총수 리스크’ 시기라면, 지금은 2차 ‘총수 리스크’ 시기인 셈이다.
'총수 리스크’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총수의 오판과 무능으로 인한 경영실패다. 동양, STX, 웅진, 대한전선이 해당한다.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기업 경영전략이 외형확장에서 내실 위주로 바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몸속에 숨어있던 암세포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세계경제가 수년째 장기침체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도 구조조정을 등한시했다. 일부는 오히려 사업확장을 꾀하는 도덕적 해이까지 저질렀다.
두 번째는 총수의 불법행위다. SK, 한화, CJ, 효성, 태광, LIG 등이 해당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총수가 부정비리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재벌의 오너경영체제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창업자들은 뛰어난 기업가정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경영승계를 통한 리더십의 지속성을 바탕으로 단기실적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사업전략을 추진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총수들이 오판을 하거나, 경영능력이 모자란 2, 3세들이 승계한 경우 그룹 전체가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총수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으면 기업은 물론 한국경제도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한국기업들의 주가가 실적에 비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이런 불확실성 때문이다. 해법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경영 투명성을 높여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또 총수의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를 정상화시켜 총수와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총수가 부정비리를 저지르고, 경영판단을 잘못해도 누구도 바른 말을 못하는 문화를 고쳐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이사회에 총수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이 최소 1~2명이라도 뽑힐 수 있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도 총수 2, 3세에 대한 경영능력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또 총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식 오너경영체제와 미국식 전문경영인체제의 장점을 모두 살려, 양자가 동등하게 공존·협력하는 절충형 경영체제도 검토할 만하다. 재계가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2·3세의 경영능력 검증, 오너체제의 대안 모색을 계속 거부할 경우 ‘총수 리스크’는 결국 파국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