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 언론 생존의 길이 있다

[언론다시보기]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 5일 세상을 떠나자 전 세계에는 잡스 이후 세계 IT업계를 이끌 리더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 실리콘 밸리 내부 동향에 정통한 ‘와이어드’(Wired) 지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이을 만한 인물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를 지목했다. 미국 포브스를 비롯해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수의 미디어들도 이구동성으로 베조스를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지목했다.

베조스를 잡스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완성하지 못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 혁신을 완수할 수 있는 혁신가라고 평가한 것이다.

베조스가 이끄는 아마존은 마켓플레이스, 기술 및 인프라, 디바이스 등 콘텐츠 유통 플랫폼의 3대 요소를 고르게 갖췄다. 첫째 아마존은 세계 최대의 온·오프 도서 마켓플레이스다. 특히 킨들 프로젝트를 통해 구축한 전자책(e-book)마켓플레이스 지배력은 뉴스, 음악, 비디오 등 다른 영역으로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아마존은 클라우드 컴퓨팅 선두 주자로서 최고 수준의 IT인프라와 기술력을 갖고 있고, 태블릿PC인 킨들 파이어를 앞세워 애플과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는 모바일 디바이스 산업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베조스는 이와 같은 비즈니스 플랫폼을 바탕으로 지난해 말부터 애플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으며 삼성전자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3~5년 안에 전 세계 출판사, 언론사, 방송사, 영화사가 아마존 유통망의 지배를 받게 될지 모른다.

국내 언론계 입장에서 아마존의 부상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언론사 닷컴 사이트가 네이버에 휘둘리고 있고, 유료화 기대를 걸었던 스마트폰용 뉴스앱 시장도 네이버 앱에 파묻히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메가 플랫폼의 등장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러나 베조스의 텍스트 콘텐츠 유료화 전략에서 언론이 살 길을 의외로 찾을 수도 있다.

베조스의 핵심 경쟁력은 책과 같은 텍스트형 콘텐츠 소비자에게 20년 가까이 집중한 점이다. 그는 1990년대 온라인 서점에 책 소비자들을 모아 이들의 구매 및 독서 습관에 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했다. 베조스는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2007년 전자책 서비스인 킨들(Kindle)을 개발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텍스트 콘텐츠 유료화를 성공시켰다.

이처럼 베조스는 아마존의 충성 고객들이 책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Tangible Good)에서 시작해 전자책과 같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제품(Intangible Good)을 구매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온라인에서 종이책을 사던 사람이 온라인에서 전자책도 사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계는 지금이라도 베조스 전략을 과감하게 베껴야 한다. 즉 언론사의 닷컴 사이트를 실제 종이신문 구독자 중심 사이트로 개편하고, 다음 단계에서 이들에게 전자 형태 신문을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유료로 구독하도록 해야 한다.

또 주목해야 할 베조스의 전략은 킨들다이렉트 출판(KDP)이다. KDP는 작가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킨들 스토어에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제도로서 기존 출판사 역할을 생략해버렸다.

KDP는 출판업계에 재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언론계는 이런 제도를 새로운 수익원 창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전문적인 글쓰기 능력과 스토리 획득 능력을 동시에 갖춘 잠재적 작가 층을 보유하고 있는 업종 중에서 언론계만한 곳이 없다.

미국 종합 경제지인 포춘의 애덤 라신스키 선임기자가 좋은 사례다. 라신스키는 지난해 5월 포춘에 애플 내부 스토리를 다룬 심층 기사를 써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한 달가량 집필 휴가를 받아 올 1월 책(인사이드 애플)을 출간했다. ‘인사이드 애플’은 출간하자마자 애플 기업을 제대로 다룬 책으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언론사가 이처럼 프리미엄 콘텐츠 생산 능력을 전자책 출판 시장에 접목시키면 회사와 저널리스트가 윈윈(Win-Win)할 수 있다. 언론사는 개별 저널리스트에게 집필 휴가, 자료조사원 지원 등 각종 지원책을 제공하고 그 대신 저작권과 인세를 공유할 수 있다.

베조스의 콘텐츠 유료화 성공의 진짜 교훈은 소비자들이 책처럼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종합화된 콘텐츠에는 언제든지 지갑을 연다는 점이다. 특정 시점에서만 필요하고 재사용성이 떨어지는 기사에서 콘텐츠 유료화 방안을 더 이상 찾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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