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출범에도 잠자는 미디어렙법
[언론다시보기]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장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장관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12.07 15:45:42
|
|
|
|
|
▲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 |
|
|
종합편성채널(종편) 4개사의 시청률이 바닥을 맴돌고 있다. 개국 첫날 0.5%대 근처를 오락가락 하더니 주말에도 그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아직 개국 초기이니 ‘종편의 실패’로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상파의 스타 PD들과 화려한 스타들을 대거 영입하며 자신들의 언론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넘치는 의욕을 보였던 개국 전의 노력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성적이다. 종편은 전국의 2000만 유료방송 가입 가구에 모두 송출되는 특혜를 따냈다. 그 중 TV조선은 지상파처럼 전국의 채널 번호를 하나로 통일하는 유리한 조건까지 확보했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동안 종편을 반대해 온 사람들은 ‘특혜방송’의 출범이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과 재벌의 언론장악 음모에 의한 합작품이라고 비난하는 주장도 있다. 이에 반해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방송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위해 종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TBC와 동아방송 등 전국 64개 언론사가 통폐합 당했던 사건을 예로 들며 독재 정권의 부산물을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주장에 힘을 실어 주듯 그 사건의 주모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국 직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언론계가 고통을 겪은 데 대해 유감 표명을 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31년 만의 유감 표명이다.
종편이 방송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지 아니면 망가뜨릴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종편으로 인해 광고 시장이 엄청난 회오리를 겪고 있는 현실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나 금융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들에게 광고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각종 ‘행사’나 ‘물품협찬’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종편들은 개국하기 전부터 수차례 기업의 임원들이나 홍보 담당자들을 불러 각종 설명회를 가졌다. 그들은 지상파의 70%에 달하는 높은 광고단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 케이블의 인기 프로그램보다 훨씬 못한 시청률을 보여 준 종편이 케이블의 10배가 넘는 광고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거절할 경우 종편들이 보유한 신문의 지면이 무서운 무기로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걸 기업의 관계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광고단가는 시청률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 시장의 원칙이고 상식인데, 그 원칙과 상식이 무시되고 강한 무기를 가진 자에 의해 광고 시장이 유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광고 시장의 여파는 힘이 약한 케이블 사들에게 밀어닥칠 것이다. 특히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 상업성이 적은 채널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한국지역방송협회에 소속된 지역민방 9개사는 25일 밤에 ‘위기의 지역방송,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긴급 좌담회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제작하여 함께 방영했다. 그와 함께 광고 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방지할 유일한 법률인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법을 아직도 표류시키고 있는 국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법의 통과를 위해 공동 대응하기로 결의했다. 지난 주말 이외수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바닥치기 시청률로 엄청난 광고료 요구했다는 종편. 콩나물 보여 주면서 산삼값 받아내면 사기행각 아닌가요”라고 조롱했다. 그 조롱이 분노로 변하기 전에 미디어렙법의 국회 통과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 수많은 시청자들을 화나게 하면 ‘종편의 실패’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