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어디에서 시작돼 어디로 가는가

[언론다시보기] 김보라미 변호사


   
 
  ▲ 김보라미 변호사  
 
1940년대 미국의 독점적 통신회사인 에이티앤티(AT&T)는 ‘허시어폰(Hush- a- Phone)’이라는 장비를 금지했다. 외부 방해 없이 통화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컵 모양의 부착 기구에 불과했으나 에이티앤티는 ‘통화서비스 품질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감독 당국이던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에이티앤티 손을 들어줬다. 결국 허시어폰 사업에 나섰던 당대의 벤처사업가 해리 터틀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에이티앤티의 금지가 위법적 독과점 행위라고 판결했지만 법정다툼이 8년이나 이어지면서 해리 터틀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해리 터틀의 외로운 싸움은 혁신을 가로막은 통신사의 이기적 위법 행위를 중단시켰고 전화시스템을 관리를 핑계로 한 혁신의 장벽을 걷어치워 인터넷의 발전과 대중화라는 예상 외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의 영웅적 행위는 1980년대 걸작 영화 ‘브라질’(감독 테리 길리엄)에서 통제국가에 대한 테러리스트로 상징화되어 나타난다.

영화에서 해리 터틀(로버트 드니로 분)은 정부의 통제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추구하며 일반시민들을 돕는다. 사인간의 정보 및 의사표현을 통제하는 영화 속 시스템 안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받는 시민들은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항의하는 시민들은 통제 시스템 내에서 정부의 정보를 왜곡하고 손상을 입혔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

허시어폰의 해리 터틀이 독점기업의 소비자에 대한 통제를 금지시키고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하여 인터넷을 표현촉진적인 매체로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면 영화 ‘브라질’의 해리 터틀은 정부로부터 통제되는 정보서비스들과 시스템을 파괴함으로써 시민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현실과 환상 속의 해리 터틀은 사적 영역이든, 공적 영역이든 통제의 정보생산시스템을 파괴하여 경쟁에 기초한 사회의 발전을 추구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최근 통신사들은 네트워크 트래픽 관리를 이유로 특정 서비스, 소위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를 차단하였다. DPI(패킷감청) 기술까지 활용하여 자사 서비스와 관련된 특정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은 이미 다량 데이터트래픽 제한 규정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비자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주 시민단체 두 곳은 공정거래법, 전기통신사업자법 등의 위반을 이유로 통신사들을 규제기관에 신고하기도 하였다.

시민단체 두 곳에서 이러한 신고를 한 비슷한 시기에 한·미 FTA 날치기 처리를 두고 흥분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이자 정부는 영하의 날씨에 시위대들에 물대포를 발사하기도 하였다.

얼마 전 정부는 한·미 FTA 반대론자들의 의견을 대부분 괴담으로 치부하며 법적 근거도 없이 “괴담을 유포하는 자들은 형사상 구속수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가 집권 여당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과거 통제능력이 있던 곳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이 변화하고 시스템이 분권화되어 간다는 것은 통제가 예전과 달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네트워크 트래픽 관리로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독점기업이나, 걱정스러운 시민들의 비판에 대해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쏘는 정부나 이러한 통제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대화는 독점적 통제력 하에서는 생성되지 않는다. 대화를 물결처럼 자유롭게 하고 그 발전으로 나타난 정보가 서로 경쟁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는 허시어폰 사례에서 본 것처럼 통제 없이도 예상 외의 혁신과 발전의 공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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