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는 외롭지 않다
[언론다시보기]신경민 전 MBC 논설위원
신경민 전 MBC 논설위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11.22 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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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민 전 MBC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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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에서 해직된 뒤 한국기자협회장을 하는 우장균이 쓴 책 ‘다시 자유언론의 현장에서’에는 ‘독수리 오형제’의 탄생과 활동을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독수리 오형제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에 취재한 인연을 지닌 다섯 회사의 다섯 기자를 지칭한다. 이들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MB가 후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약속한 뒤 정보를 취합해 공유하고 이 후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들어갔다. 대선 뒤 오형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청와대 출입기자로 옮겼다. 이후 청와대 인사에 개입하는 등 음양으로 활약을 했다는 관측이 정보지에 등장할 정도로 존재와 이름이 상당히 알려졌다.
우 기자의 글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박근혜 후보를 취재했던 기자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 후보가 패하자 낙담한 나머지 며칠 휴가를 떠났다는 부분이다. 독수리 오형제의 득의만만이나 박 후보를 취재한 기자의 낙담이나 모두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비상식, 몰상식이 현재 언론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인 셈이다.
독수리 오형제는 자기들이 정권을 창출했고 집권 뒤 애프터서비스로 정권을 비호하는 역할을 하는 최초의 출입기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형제는 첫 자식이 아니다. 비상식, 몰상식은 돌출적이 아니라 구조를 지니고 있어 캐고 들어가면 독재와 맞닿아 있고 구조는 언론의 내외부로 통한다.
정권을 비호하는 기자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극성기였던 5공 시절 청와대 기자들은 보도자료만 기사로 썼다. 보도자료가 성역에 속하는 완벽한 기사와 해설이라서 모든 보도가 판박이였다. 기자실 여직원이 직접 기사를 각사 정치부로 불러주거나 연합 기사가 곧 들어가니 그대로 쓰라는 연락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방송의 청와대 출입기자가 복수로 늘어난 이유는 취재할 일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땡전뉴스’로 꼭지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땡전 꼭지가 넘쳐 사회부 말단인 내가 목소리를 빌려줘야 할 경우가 생겨 원고를 검토하다가 문법적 잘못을 발견했다. 하늘같은 청와대 출입 선배에게 원고를 고치겠다고 말하자 선배는 펄쩍 뛰면서 “그대로 읽어. 내일 청와대 나가면 내가 혼난다”고 했다. 문법보다 청와대가 위에 있었다.
출입기자의 임무는 정보보고가 훨씬 중요했다. 힘 센 간부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아 정보보고도 풀로 쓸 경우가 많았다.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현실을 개탄하거나 자기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하게 뻐기면서 자신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사내외 권력을 즐겼다.
독수리 오형제와 더 닮은 선배는 YS 장학생이다. 이들은 야당 시절을 거쳐 3당 통합 시절에 동고동락하면서 한 배에 탔다. 그뿐만 아니라 방향타를 잡아 대변인 성명과 기자회견문의 작성은 기본이고 일정과 톤을 조절했다. 지면 사정을 코치하면서 핵심을 찌를 주요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매일 숙의를 거듭했다. 이건 비밀이 아니라 자랑거리였다. 명절에 YS표 멸치를 받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떠들었고 “YS는 내가 없으면 큰일 나. 항상 나를 찾아”라고 말하고 다니는 기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청와대 출입은 물론이고 여러 자리를 찾아 떠나갔다.
돌이켜보면 언론인의 정계진출은 이때부터 질과 양적으로 달라져 언론계가 주요 충원처와 줄서기 경연장으로 등장했다. 물론 이전에도 언론인의 변신이 있었지만 독재정권이 필요에 따라 소규모로 제한적 선택을 했다. 급기야 지난 대선에는 언론인만으로 독자 캠프를 꾸릴 수 있을 정도로 구름처럼 모였다. 이명박 캠프에서 공개적으로 일 한 언론인은 수백을 헤아렸고 숨어서 도운 언론인은 집권 이후 하나씩 드러나 좋은 자리로 나갔다. 이런 현상은 처음이고 언론의 조로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독수리가 높이 날기 위해서 숲과 토양이 필요하듯이 독수리 오형제의 활약은 회사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데스크와 담당 부장이 알고 상층부가 중요 기사의 톤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언론사 지휘부가 적어도 용인했거나 방조 혹은 지원하지 않으면 오형제는 날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회사 내부가 적극 필요하다고 봤을 것이고 처음부터 기자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 수 있다. 캠프는 그렇게 해야 취재를 잘할 수 있다고 흘리면서 왕당파 기자를 환영하고 회사 상층부의 적극적 지원을 금방 읽어냈을 것이다. 이심전심이 아니라 내통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내외부 구조에서 언론의 윤리, 원칙을 논해봐야 하품 나는 일이고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일 뿐이다.
현재 유력한 대권후보에게 ‘심기 경호’ 기자가 형성돼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독수리 후배가 화려한 비상을 하기 위해 대기 중이란 뜻이다. 독수리 오형제는 인생무상을 느끼겠지만 지금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장래에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독수리가 설칠수록 언론의 미래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