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 독설 퍼붓는 기성언론
[언론다시보기]공훈의 위키트리 대표
공훈의 위키트리 대표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11.15 23: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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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훈의 위키트리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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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이대로 가면 ‘언어 테러’의 흉기다.” (조선일보)
“막말 먹고 크는 SNS…‘소통의 장’ 아닌 ‘마녀사냥의 도구’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기성 언론이 최근 쏟아놓은 트위터를 향한 ‘독설’이다.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을 그렇게 달았다. 동아일보는 박스 기사의 제목이었다. 동아일보는 트위터를 상징하는 파랑새를 변형한 디자인컷도 큼지막하게 실었다. 눈 주위로 검은 띠를 질끈 동여매고 양 날개에는 날카로운 표창을 들었다. 그러니까 자객의 모습이었다.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면서 트위터를 중심으로 SNS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이 다시 입증됐다. 이후 한·미FTA를 놓고 찬반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트위터에서 반대여론이 압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우려’가 표출됐다. 그 ‘우려’는 안타깝게도 ‘독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이 같은 표현에 대해 트위터에서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기성 언론에 대한 실망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 중 눈에 띄는 반응들을 보면 “조선일보의 우익편향적 보도방향에서 보면 트위터는 테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트윗을 통해 양방향으로 올바른 정보를 유통시킨다.” “조·중·동이 무서워하는 유일한 존재가 생겼네요! 트위터^^”라는 식이었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독한 독설이 많았다.
트위터는 소통의 장이다. 동시에 미디어다. 기존 언론매체의 입장에서 보면 소통의 장이자 유통의 채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트위터 사용자들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대방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독자들이다.
과거의 신문독자들은 신문에 보도된 뉴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반응을 널리 전파할 수도 없었고 미디어에 기록으로 남길 수도 없었다. 신문의 논설이나 보도는 일방적으로 전달됐고, 독자들은 그 논조를 다수의 의견으로 ‘간주’했다. 반대 의견이 있어도 가족이나 동료들 사이에 아주 제한적으로 전달될 뿐 결국은 혼자 삭여야 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소셜 네트워크의 등장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본질은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의 상대방들과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기존 미디어 환경에서는 신문과 같은 매스미디어가 과점하고 있던 기능이다. 그러나 이제 독자들은 매스미디어를 경유하지 않고 다수 대 다수의 소통을 실시간으로 나누고 있다. 언론매체를 경유하지 않고.
뉴스에 대한 반응도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교환한다. 그리고 그 반응은 SNS에 빠짐없이 기록된다. 뉴스에 대한 평가와 언론매체에 대한 평가가 동시에 이뤄짐은 두말 할 것이 없다. 신문의 일방적인 논조나 여론의 계도를 명분으로 한 특정한 성향은 블특정 다수에 의해 여지없이 평가를 받는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대중은 이제 다수의 평가를 더 믿는다.
과연 기성언론이 트위터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이른바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기성 신문들이 트위터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확한 실태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9월 초 ‘블로터닷넷’이 창간 5주년 기념으로 30개의 국내 주요 신문과 방송 및 인터넷매체 실시한 ‘매체 트위터 인덱스 분석’은 그 조사범위나 방법에서 최근 트위터에서의 매체 평가 가운데 가장 정확한 결과로 꼽힌다. 이 결과를 보면 조선일보의 경우 매체인용률에서 4위, 매체노출량에서 9위, 기사지속력에서 1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기사 1건당 노출량과 기사전파력에서는 2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에 비해 동아일보는 매체인용률에서 17위, 매체노출량에서 13위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모든 부문에서 2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조사기간 동안 조선일보는 30개 매체 가운데 세 번째, 동아일보는 일곱 번째로 많은 기사를 트위터에 전송했다.
비난하거나 얕보자는 게 아니다. 트위터에 독설을 쏘아붙인 이들 신문이 그동안 트위터에서의 소통에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일 과거 미디어 환경에서 누려왔던 일방적 소통의 권위가 트위터에서 좀처럼 먹혀들지 않는 데 대한 반작용이라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 심각해질 뿐이다.
트위터에서의 소통은 수평적이며 감성적이다. 언론매체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면 외면 또는 비난을 받을 뿐이다. 재미와 감동을 속성으로 하는 감성 대신 독설을 앞세운 감정을 내세우면 더 독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적극적인 독자들이다. 독자에게 독설을 퍼붓는 언론이 과연 설 자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