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은 위임경영…사설은 주필, 지면은 편집국장 99% 권한”창간 9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의 인터뷰는 24일 조선일보 사옥 6층 사장실 옆 접견실에서 이뤄졌다. 조선일보의 90주년에 각별한 의미를 둔 방 사장은 “100주년 때도 1등 신문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10년 뒤 시장 전체에서 가장 많은 오디언스를 가진 미디어그룹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기자협회보도 그때 다시 한번 조선일보를 찾아달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방 사장과 기자협회보의 인터뷰는 2004년 이후 6년 만이다.
-조선일보 창간 90주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90이라는 숫자 자체의 의미보다 “10년 후 100주년을 앞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준비 기간의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 큽니다. 또한 시대적인 변화, 즉 미디어 환경의 급격하고 다양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갈림길을 맞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조선미디어 그룹의 새로운 CI(Corporate Identity)를 선포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인 창간 100주년에는 가장 많은 오디언스의 사랑을 받는 조선미디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창간기념사에서 “조·중·동 중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국내 신문에는 경쟁상대가 없다는 뜻입니까.인터넷, 방송, 모바일 등 새로운 미디어를 포함한 전체 뉴스 콘텐츠 공급자 가운데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분입니다. 그 말은 조선일보가 기존의 신문업계 1등으로 만족하지 말고, 모든 미디어를 망라하는 전체 뉴스 공급자 시장에서 1등을 하자는 뜻입니다.
-조선이 내놓은 텍스토어(e북),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등 모바일 플랫폼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국내 신문사들의 뉴스 유료화 가능성 또는 비즈니스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유료화는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양질의 콘텐츠, 독자들이 꼭 보고 싶어할 만한 콘텐츠를 갖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앞으로 콘텐츠 공급자인 신문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콘텐츠의 유료화 여부죠.
조선미디어는 이미 종이 신문만을 만드는 신문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올해 e북 등을 통해 뉴스 콘텐츠 유료화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조선일보에서만 볼 수 있는 차별화된 프리미엄급 콘텐츠를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해 조선일보, 조선닷컴, 휴대전화, 아이리더, T페이퍼, 비즈니스앤(방송), M섹션, 전광판 등 다양한 디바이스에 담아낼 겁니다. 그걸 위해 온라인 경제·경영 뉴스 콘텐츠 전문 매체인 조선경제i도 신설했습니다. 조선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라면 기꺼이 값을 지불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들 겁니다.
물론 유료화가 소비자의 자유로운 정보접근 기회를 막는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조선일보가 유료화를 추진하는 목적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자는 겁니다. 다시 말해 유료화가 고급 콘텐츠 생산의 경제적 토대가 되고 차별화된 고급 콘텐츠가 유료화를 가능케 하는 ‘뉴스·정보의 선(善)순환 생태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유료화의 성공은 미디어 환경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트위터, 스마트폰은 사용하십니까. 언론사 어플리케이션 표준화도 중요 과제인 듯합니다.트위터는 알고 있어요. 아직 하지는 않습니다. 스마트폰은 갖고 있습니다. 집에서 신문을 보고, 출근하면서 아침에 차 안에서 (조선일보 어플을) 봅니다. 어플 표준화는 필요한데 디바이스 변화가 너무 빨라 맞추기 어렵습니다. 각사가 경쟁하면서도 하나의 스펙이 같이 이뤄지도록 연구해야겠죠. 신문협회에도 관련 기구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구독자들은 연령대가 높습니다. 조선이 영 오디언스(Young Audience)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지만 성과가 좋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모든 신문 구독자는 대체로 연령이 높습니다. 물론 이른바 ‘영 오디언스’로 불리는 젊은 세대가 신문을 잘 보지 않는 건 맞습니다. 그들은 신문 말고 다른 매체에 더 익숙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신문 구독을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스마트폰 등 새로운 디바이스를 통해 젊은 독자층에게 조선일보 뉴스를 꾸준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젊은 독자층이 조선일보가 만든 뉴스 콘텐츠가 정말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전략입니다.
-종합편성채널의 성공 가능성에 부정적인 관측도 많습니다. 조선이 종편에 진출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또한 올드 미디어인 방송사를 설립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인데요. 모든 사업이 성공 확률은 굉장히 낮습니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의 시너지 효과를 기반으로, 기존 지상파 방송보다 경영에서 거품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면 종편 사업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공의 핵심요건은 차별화된 고급 콘텐츠 제작 능력과 재정적 충실도입니다. 조선일보는 방송 진출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조선일보가 방송을 하니까 역시 다르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겁니다. 크로스 미디어인 ‘천국의 국경을 넘다’로 국제적으로 콘텐츠 제작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조선미디어의 재정적인 충실도는 어떤 경쟁사도 따라오기 어렵습니다. 올드미디어인 방송에 뛰어드는 게 적절하냐고 물으셨는데, 올드미디어 뉴미디어를 떠나 독자에게 균형있고, 깊이 있는 뉴스를 만들어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기본 사명이요, 책무입니다.
-‘품격있는 글로벌 방송’을 강조하신 바도 있습니다만.의미있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야 하고 글로벌한 콘텐츠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통일에 대비해서 방송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매일 막장드라마만 틀어서 되겠습니까. 언론으로서 공익성 차원에서 해야 할 것이 많죠. 우리는 뉴스를 하면 단순히 나열식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뉴스를 다양하게 여러 각도에서 재미있게 하면 대중성도 갖출 수 있겠죠. 그러면서 균형 잡힌 뉴스도 할 수 있지 않나 봅니다. 막장드라마로 경쟁하면 자본력이나 경험이 뛰어난 기존 사업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90년 동안 뉴스 하나만 만들어왔습니다. 뉴스에 대한 노하우와 균형감각이 있으니 차별화시킬 수 있습니다.
-조선은 지지와 반대가 극명하게 갈리는 매체입니다. 고정 독자들의 로열티가 높은 반면, 조선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강력합니다. 조선을 비판하는 계층과 화해할 생각은 없습니까. 비유를 들면 밥상에 밥과 반찬이 이것저것 여러 가지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다 집어넣어 끓이면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됩니다. 조선일보는 조선 독자의 생각, 조선이 대변해야 할 계층의 시각을 충실히 대변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계층의 의견도 충실하게 보도할 겁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좀더 균형 잡힌 의견을 갖게 도와주고 노력하면 조선일보의 비판세력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정권 잘못 지적은 언론의 사명…비판을 위한 비판은 없다"-이명박 정부 출범 2년이 지났는데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현 정부가 경제적 위기를 원만하게 넘겼고 외교나 대북 관계에서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정부의 잘못과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게 언론의 기본 사명입니다. 그 점에서 조선일보는 언론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현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비쳐졌는지 모르죠. 중요한 건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 일은 없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힘은 뭐라고 보십니까.15년 전쯤 같은 질문을 언론계 원로들에게 받았습니다. 박권상(전 KBS 사장), 중앙일보 김영희(대기자) 등 대여섯 분을 만났는데 “사장이 된 뒤 흑자를 내고 잘 되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묻더군요. 조선의 사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철저하게 위임경영을 하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사설·칼럼은 주필의 소관입니다. 지면은 편집국장이 만듭니다. 99% 위임하죠.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제가 항공사 회장이라 칩시다. 비행기는 조종사가 제일 잘 몹니다. 간섭하면 비행기가 어디로 갑니까? 추락하죠. 조종사를 믿었으면 맡겨두고 몇 가지 원칙만 주면 됩니다. 안전이 첫째이니 위험하면 기름을 아끼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조하고, 조종사가 혹시 가정불화는 없나 철저히 감독만 하면 됩니다. 조종에 대해선 간섭해선 안 됩니다. 간섭을 막아주는 게 사장의 역할이죠. 언론으로 치면 정치권력, 재벌 등 이해집단들과 경영주로부터의 압력입니다. 이런 것에서 철저히 보호해 줘야 한다고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지금 15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포퓰리즘의 압력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것도 사주가 막아줘야 합니다. 이럴 때 신문을 독립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맡기면 간섭하지 말고 밖의 압력을 막아주고, 두 가지만 잘하면 신문도 잘 됩니다.
"언론사에 대한 기업의 광고중단, 바람직하다고 생각 안해"-경향신문과 한겨레에 대한 삼성 광고가 2년5개월 동안 중단된 바 있습니다. 같은 언론인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기본적으로 기업과 언론 간 문제이므로 개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선도 과거 두 대기업이 광고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던 경험이 있었죠. 언론사에 대한 광고 중단이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광고 집행은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니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쨌든 언론사에 속한 구성원들이 광고 문제로 기사를 쓰는 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사장으로서 이것만큼은 꼭 해놓고 싶다 하는 것이 있습니까.IPI(국제언론인협회)가 냉전체제에서는 굉장히 영향력이 있었어요. 특히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에 영향력이 컸죠. 당시엔 언론자유가 절대 가치였습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미디어환경이 급변하면서 WAN(세계신문협회) 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신문이 ‘서바이벌’해야 되다 보니 변화가 필요하고, 경영기술이 중시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최고 가치는 언론자유와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죠.
조선이 1980년대 들어서 양적인 면에서 1등이 됐습니다. 권력에 대한 언론으로서 독립성은 그때까지는 동아일보가 더 앞섰습니다. 우리가 양적 1등이었지만 정신적 1등은 못했습니다. 이전 시대에 우리가 양적 1등이었다면 이제는 정신적인 면에서도 1등이 돼야 합니다.
예전에 박권상 전 KBS 사장과 개인적으로 가까웠습니다. 박 전 사장이 제게 “‘그레이트 퍼블리셔’(Great Publisher)가 돼라”고 하더군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언론사 사장으로서 언론의 독립성을 지키는 역할을 해달라는 뜻이죠. ‘그레이트 퍼블리셔’란 말을 항상 제 마음 속에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신문이 방송 문제 때문에 제대로 기사를 못 쓰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해선 안 되고, 그런 신문은 오래 못 간다고 봅니다. 조선이 9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것에서 자유롭기 때문이었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방송에 관심이 있고, 또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나온 상황이잖아요. 우리가 높이뛰기를 할지, 달리기를 할지는 모르고 최선을 다해 기본체력을 조용히 키우고 있지만 방송을 하기 위해 조선일보의 혼을 팔아먹지는 않습니다. 아마 다른 언론사 사장들도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정부로부터 이런저런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소리가 안 들리는 언론은 언론이 아닙니다. 권력이 하느님이 아닌데 항상 잘 할 수 없잖아요. 잘못하는 부분도 이야기하는 건 언론의 사명입니다.
진행=김신용 편집국장
정리=장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