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 남극대륙을 밟다
아라온號 남극항해 동행취재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 입력
2010.03.10 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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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이은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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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2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리틀턴 항.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 쯤, 빨간색의 아라온 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보물섬을 찾아 떠나던 소년 짐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아라온 호에 오르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4년 전, 취재차 만난 극지연구소 운석탐험대장 이종익 박사가 남극 대륙에서 운석 탐사를 한다고 하자 무작정 데려가 달라며 치기를 부렸던 그였다.
“이 박사가 운석 탐사를 다녀온 뒤 선물로 준 열쇠고리를 3년간 갖고 다녔어요. 남극에 가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죠. 그러다 우리나라 첫 쇄빙선 아라온 호가 남극 대륙을 항해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 취재를 요청했어요.” 아라온 호의 38일간 남극 항해에 동행한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가 돌아왔다. 그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아라온 호를 타고 서남극 케이프 벅스, 동남극 테라노바 베이를 밟았다.
남극대륙은 그동안 우리나라 방송사가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지역이다. 남극 북서쪽 끝에 위치한 세종기지는 기자들이 간혹 취재를 했지만 남극대륙은 미지의 땅이었다. 이 기자는 이번 취재에서 남위 75도까지 다녀왔다. “눈이 반쯤 뒤 덮인 남극 대륙에 첫발을 내딛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아라온 호에서 헬기를 타고 대륙으로 넘어가는데, 얼마나 가슴이 두근대던지…. 발에 밟히는 남극의 땅은 푸석푸석했어요.”
남극 대륙을 밟은 그날 저녁 그는 잠을 청하지 못했다. 남극땅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여운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작은 일들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봄꽃처럼 피었다. 남극에 다녀온 뒤 만난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의 얼굴이 좋아지고 표정도 밝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 모든 것이 남극의 하얀 눈과 새파란 바다에 마음이 정갈해졌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남극에서 뉴스 전송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남위 70도를 넘어서자 인터넷이 끊겼고 위성데이터를 통해 KBS와 교신했는데, 파일이 크다 보니 리포트 하나 분량의 동영상을 보내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는 이런 악조건을 뚫고 아라온 호의 남극 탐사 전 과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했다. 이번 남극 취재를 통해 방송기자의 맛을 제대로 느꼈다. 과학기사의 특성상 영상미의 부족을 항상 절감했는데 이번에는 맘껏 영상으로 승부했다.
남극 탐사 기간, KBS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남극대륙을 가다’ 코너도 인기를 끌었다. 남극의 얼음과 유빙, 광활한 대륙을 찍은 생생한 사진과 방송에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16회 연재했는데, 조회수가 많게는 5만명이 넘었다. 사진은 그와 동행한 김철호 촬영기자가 찍었다. 그는 김 기자가 출장기간 내내 큰 힘이 돼줬다며 고마워했다.
이 기자는 1995년 경향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뒤 2007년 4월 과학전문 경력기자로 KBS에 입사했다. 미생물학을 전공했던 그는 경향신문에서 기자 초년병 시절을 제외하곤 과학을 담당해 왔으며, 2002년에는 생명윤리 연구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남극을 미지의 보물섬이라고 표현한 그는 국내 언론이 남극을 취재할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