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고객 마인드…기자들이 고민해야 할 화두"

이필재 중앙일보시사미디어 경영전문기자


   
 
   
 
국내 현역 기자 중 기업 CEO를 가장 많이 인터뷰했다는 이필재 중앙일보시사미디어 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는 경제·경영 분야 외길을 걸은 지 올해로 19년째다. 최근에는 이코노미스트에 연재했던 ‘한국의 브랜드 CEO’를 보완해 16명 CEO의 인터뷰집인 ‘CEO 브랜딩’을 연달아 내놨다. 그는 왜 그렇게 CEO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됐을까.

“CEO들은 ‘열정적인 독종들’이죠.” 내로라 하는 CEO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내공은 단순한 경영기법이 아니라 철학임을 알게 됐다. 사법고시에 네 번 낙방하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중동 건설현장으로 떠났다가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 CEO가 된 남승우 풀무원 사장은 ‘새옹지마’의 고사를 되뇌었다. 여러 번의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낙관주의를 지키는 도전정신, 그것이 백조의 우아한 자태 뒤에 숨은 발장구였다.

리더십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는 요즘, CEO리더십 전문가인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국가 리더십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이 기자는 “CEO 리더십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금 시대는 ‘팔로 미’(Follow Me) 유형보다는 다양한 영역을 통합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합니다.” 흔히 인용되는 기업가정신도 오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企)업가가 아닌 진정한 기(起)업가 정신은 단순한 비즈니스맨십(Businessmenship)이나 권위주의, 관료주의가 아니라 가치와 비전을 창조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가 강조한 사회적 리더십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적 리더십’과 ‘위임의 리더십’이다. 지휘자가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모두 잘하고 간섭할 필요가 없다. 각 분야의 단원들을 잘 조화시키는 게 능력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이는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구성원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위임의 리더십’과도 통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영에 도가 튼 구루(Guru, 힌두교 등 종교에서 일컫는 신성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그가 개인적으로 받은 지적·정서적 자극 또한 엄청났다. 삶도 따라 변했다.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궐석재판의 승자가 돼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을 만큼 자신과 주변을 관리하라는 뜻이죠. 그래서 ‘할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할 말을 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도 그가 수많은 CEO와의 인터뷰에서 배운 지혜다. 화가 났다는 사실만 알려주면 된다. 감정을 담을 필요가 없다. 한 번은 중요한 인터뷰에 후배 기자를 데려갔다. 다녀와보니 인터뷰 내용이 전혀 녹음이 되지 않았다. 후배의 실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 웃으면서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10년 전만 같았으면 넌 큰일났다”고.

그는 기자들이 성공한 CEO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귀띔했다. 지사(志士) 정신이 사라지고 샐러리맨화됐다고 푸념만 할 게 아니다. CEO들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들도 남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1인 기업가’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뿐 아니라 기자들이 제일 간과하는 것은 ‘고객 마인드’다. “기자들은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활자매체 기자들에게 절실합니다.” 독자들은 김연아에 대한 뉴스를 갈구하지만 신문은 보지 않는다. 콘텐츠 수요는 있는데 신문과 잡지는 왜 외면당할까. 그가 던진 질문이다.

그러나 이 기자는 경제저널리즘의 원칙 또한 강조했다. “요즘 경제 부문에서 비판 기사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외환위기 때 한 선배 기자(중앙일보 손병수 기자)가 쓴 칼럼 ‘재경부 출입기자의 5대 원죄’를 후배 경제 기자들이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 경제의 위기를 조기 경보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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