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조난의 순간 뜨거운 동료애로 극복

KBS 김경수 기자, 오은선 원정대 48일간 취재


   
 
  ▲ 왼쪽부터 KBS 김경수 기자, 오은선 대장, 김대원·김성현 촬영기자.  
 
가도 가도 무덤 같은 어둠뿐이었다. 빙하수는 콰르릉거리며 마구 떨어졌다. 셰르파 한 팀이 구출하러 갈 것이라는 무전을 받은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탈진 상태를 보이던 김대원 촬영기자는 이제 잘 걷지도 못했다.

그를 부축하며 발걸음을 떼던 김경수 기자는 겁이 더럭 났다. 해발 3천3백m에서 조난은 안전사고와 직결된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셰르파들이 분명했다. “여기요! 여기요!” 목청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어둠 속에서 희미했던 불빛은 점점 크게 보였다.

KBS 김경수 기자가 조난을 당할 뻔했던 날은 9월20일. 히말라야에서 지형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뚤루부긴 고개를 넘어 안나푸르나 북쪽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그는 9월14일부터 40여 일 동안 히말라야에 있었다.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했던 ‘오은선 원정대’의 마지막 목적지, 안나푸르나 등반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KBS에서는 김 기자를 포함해 정하영 촬영감독, 김대원, 김성현 촬영기자등 5명이 동행했다.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 고 현명근 기자의 추모비를 찾았다. 1999년 히말라야 칸첸중가 등정 과정을 취재하던 중 사고로 숨진 현 기자에게 ‘선배, 도와주세요’라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히말라야는 악조건의 연속이었다. 혹독한 추위는 말할 것도 없고, 악질적인 고소증세를 견뎌야 했다. 식수도 문제였다.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 걸러서 식수로 사용하는데, 석회가 많았던지 한달 내내 배앓이를 했다.

방송환경도 열악했다. 현지에서 취재한 화면을 오디오와 함께 편집한 완제품을 위성인터넷을 통해 서울로 보내는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1분20초짜리 뉴스를 전송하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더구나 서울이 네팔보다 3시30분이 빠른 까닭에 저녁 9시뉴스에 맞추려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또 하나의 복병은 전기였다.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데 심한 일교차 때문에 발전기 고장이 잦았던 것. 그럴 땐 위성전화로 기사를 불러야 했다. 그런 열악한 조건을 딛고 10여 차례가 넘게 뉴스를 보냈고, ‘특파원 현장보고’와 ‘취재파일 4321’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뜨거운 동료애를 느꼈다. 또 6밀리 카메라를 매고 베이스캠프를 나서는 선배의 뒷모습에서 프로정신을 배웠다. 정상 등정에 실패하고 돌아온 오은선 대장의 피곤한 얼굴 너머로 한국 여성의 억척스러움을 보았다. “다시 가라고하면 못 갈 것 같아요. 하지만 1백53㎝도 안 된 작은 체구의 한국 여성이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하는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시작한 만큼 마무리는 내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그는 2005년 10월 월간조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뒤 주간조선을 거쳐 2008년 KBS에 경력기자로 입사한 4년차 기자다.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뒤 이틀만 쉬고 곧바로 현장으로 복귀했다. 결혼한 지 1년.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현재 서울 중부경찰서에 출입하고 있다. 사건이 처음인 그는 상당히 긴장된다고 했다. 하지만 월간조선 시절, 한 달에 열흘 이상 여관에서 자면서 취재했던 기억을 되살린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히말라야 취재로 기자인생에 쉼표를 찍었다는 그는 새로운 도전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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