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참여에 미래가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거리투쟁 나선 천정배·최문순 의원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9.08.05 14:19:00
“안녕하세요. 서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이 무더위가 주저앉은 서울 명동 거리에 나타났다. 손에는 ‘언론악법 원천무효’라고 쓰인 유인물을 들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서명을 권유한다. 미디어법 통과 이후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 ‘장외 투쟁’을 선언한 천정배·최문순 민주당 의원이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한 뒤 33년 만인가요. 이렇게 넥타이를 풀고 거리에 나서 사람들을 만나니 정말 자유롭습니다.”
3일 낮 명동 거리에서 만난 천정배 의원의 표정은 밝았다. 표정이 좋은 이유는 또 있었다. 시민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는 것이다. 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1시간에 평균 3백~4백 명은 서명을 하는 것 같다”며 “국민 70% 이상이 미디어법을 반대한다는 게 맞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더욱이 젊은이들의 참여가 천 의원을 기쁘게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젊은 시민들이 거리낌 없이 서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 나라의 미래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낍니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천 의원보다 먼저 의원직 사퇴서를 던진 최문순 의원도 거리가 낯설지 않다. 최 의원은 지난해 여름 정연주 사장이 논란 끝에 물러난 KBS 사태 때부터 이미 ‘거리의 국회의원’으로 나섰다. 명동을 ‘언론악법 폐기를 위한 1백일 행동’의 근거지로 삼자는 것도 최 의원의 제안이었다. 명동은 ‘민주화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천 의원과 최 의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낸 뒤 광화문에 있는 한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아는 사람이 공간을 선뜻 내줬다고 한다. 여의도에 있을 때보다 더 분주하다. 그래도 오후 6시에는 무조건 명동성당 앞으로 향한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해온 거리 홍보전 때문이다.
두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대해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다. 분주히 유인물을 돌리던 최 의원은 “이렇게 전혀 말이 안 되는 것까지 헌재가 손을 들어줘버리면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 의원은 “이번 한나라당의 표결은 진보·보수 이념을 떠나 날치기 중에서도 너무나 법적·절차적 하자가 뚜렷한 민주주의의 기초에 관련된 문제”라며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리라 믿는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의원직 사퇴를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 의원은 “천 의원이 계시니 외롭지 않다”며 웃었다. 이날은 추미애, 이종걸 민주당 의원, 김근태 고문을 비롯해 무소속 정동영 의원까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거리에 나섰다. 역시 약속도 없이 모인 것이었다. “결국 믿을 것은 사람들의 힘뿐입니다.” 천 의원과 최 의원의 결단은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