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에서 남긴 2만㎞의 기록

[인터뷰] 다큐 '천국의 국경을 넘다' 조선 이학준 기자


   
 
  ▲ 조선일보 이학준 기자  
 
국내외 13개 각종 언론상 수상, 영국 BBC 등 해외 16개 방송사에서 방영 또는 편성 확정, 후보작으로 올라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상(償)도 여럿이다. 해외에서 전파를 탈 기회도 늘어날 전망이다. 조선일보의 크로스미디어기획 ‘천국의 국경을 넘다’가 받은 성적표다.

중국, 태국, 라오스, 러시아 등 9개 국가를 돌며 탈북자 인권 실태를 파헤친 이학준 조선일보 기자는 목숨을 여러 번 걸어야 했다. 국경지대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붙들려 절체절명의 순간에 빠졌고, 밀입국을 시도하는 탈북자들과 함께 열대림을 뚫고 나가며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공포의 한계상황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반향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노하우가 풍부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그러나 신문 취재의 강점이 이 모든 취약점을 상쇄했다. 작가 중심으로 완성도 있는 플롯을 짜놓고 진행되는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이 크로스미디어 기획은 철저한 현장취재와 팩트의 수집 이후 플롯을 잡아나가는 ‘신문 기사’ 방식을 택했다. 거칠지만 생생한 현장의 숨소리를 담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는 ‘몸을 던지는 취재’였다. 취재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기자는 우선 국내 탈북자들을 취재했다. 그러나 국경지대에서 벌어진다는 인신매매, 마약 거래, 씨받이가 돼 애 낳는 기계 취급을 받는 탈북 여성 등은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종교인을 만났다. 그는 “찾아오는 기자는 많았지만 밀입국까지 각오하고 취재하려는 기자는 없었다. 그럴 자신이 있느냐”고 입을 열었다. 결국 그의 주선으로 중국에 들어가서는 호텔이 아닌 조선족 마을에 방을 얻고 그들과 호흡했다. 밀입국하려는 탈북자들과 함께 태국 국경까지 오고간 몇 주 후, 드디어 무엇인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들 스스로 탈북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제작을 마치고 난 뒤에는 제2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작정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영국으로 가 BBC 수위실부터 두드렸다. 필름을 본 BBC 관계자는 “당신들이 찍은 게 맞느냐”고 의심부터 했다. 도무지 직접 취재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북한 인권 문제를 다시 건드렸다. 그는 탈북자 문제를 이념과 별개로 접근하기를 주문한다. “국경지대의 탈북자들은 말 그대로 짐승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념을 떠나서 그들을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이학준 기자는 2주 뒤 새로운 크로스미디어 기획 취재를 위해 비행기를 탄다. 힌트라도 달라고 하니 한사코 고개만 젓는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 이상으로 도전적인 프로젝트라는 귀띔뿐이었다. 과연 10개월 동안 2만㎞의 취재 길을 달리고 나서도 충만한 저 에너지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한다는 한 선배와 다짐했던 말을 항상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다. “우리가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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