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역사에 대한 반성문이죠"

한센병 다큐멘터리 '100년의 참회록' 만든 KBS 정길훈 기자



   
 
   
 
“정부가 공식 사과했지만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여전해요. 외형의 낙인이 남긴 뿌리 깊은 인식 때문이죠. 그러나 정작 취재 도중 만난 한센인들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더군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감명 받았어요.”


KBS 순천방송국 정길훈 기자는 지난해 말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리와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 개통 문제점을 취재하다가 충격적인 증언을 들었다.


소록도에 1990년대까지 단종(정관절제)수술을 받은 한센병 환자가 있다는 믿기지 않은 얘기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단종수술이 이뤄졌다는 그동안의 인식을 깨는 증언을 확보한 그는 보도특집으로 다루기로 결심했다. “소록대교가 개통하는 시점에 한센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우리 사회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문을 하나 써보자는 의미였죠.”


그는 서재덕 카메라 기자, 박은영 작가와 팀을 이뤄 곧바로 자료 조사에 착수했다. 1985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소록도 방문 당시 화면, 1930년대 소록도 한센인들의 명함판 사진 등 귀한 영상자료를 입수했다.


5개월에 걸쳐 만들어진 한센병 백년 특집 다큐멘터리 ‘100년의 참회록’은 지난 4월22일 광주·전남지역에 방영됐다. 방영 이후 한센인과 그들 가족들의 격려가 끊이지 않았고 일반 시청자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정 기자는 이 다큐멘터리로 224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센인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으로 40여 년간 한국과 일본에서 떨어져 살았던 최남순·최남용 남매의 사연을 소개하고 일제강점기 소록도병원에서 한센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이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1992년에 단종수술을 한 소록도 원생 송문종씨의 사연을 소록도병원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혀냈다. 일본과 대만의 한센인 요양시설에 대한 현지 취재를 통해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3국 한센인들의 차별과 소외의 역사도 전했다.


정 기자는 일본의 한센인 수용시설에서 만났던 재일동포 한센인 김씨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재일동포 한센인이라는 이중차별을 견디고 살았던 김 할머니는 취재팀 먹으라며 손수 김치전을 만들어 내오셨다.
“너무 반가워하시더군요. 그동안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해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재일동포 한센인으로 인고의 세월을 살았을 김 할머니가 김치전을 먹으라고 내놓는데 목이 메더군요.”


그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계기로 ‘한센인특별법’ 개정 작업이 빨리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정부는 2007년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한센인 피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의무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어요. 특히 수치심을 억누르면서 인터뷰에 응해준 한센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1995년 KBS 광주방송총국에 입사한 정 기자는 지난해 1월부터 순천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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