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눈치보는'공정 저널리즘'이 KBS 신뢰 무너뜨려"
4개월 정직 끝내고 돌아온 김현석 기자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 입력
2009.06.03 14:53:50
사람들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거나 가볍게 등을 토닥거렸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손짓이나 몸짓으로 알은체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들이 나왔고 그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김현석 기자가 돌아왔다. 전 기자협회장이었던 그는 지난해 8월 이병순 사장 취임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애초 그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공동대표였던 양승동 PD와 함께 파면을 당했으나 기자와 PD들이 제작거부로 맞서면서 재심 끝에 정직 4개월로 경감됐다.
복귀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로비에서 만난 김 기자는 소감을 묻자 “옛 애인을 만난 듯 설레고 새롭지만 KBS를 둘러싼 상황이 좋지 않아 한편으로 답답하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서 ‘힘들다’는 문자를 많이 받아요. 인터뷰를 거부당하고, 취재현장에서 쫓겨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나 봐요.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 언론사가 어느 순간부터 시민들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신뢰를 쌓기는 힘들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는 정직기간에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4월에는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다녀왔다. 한달 넘게 그곳에 머무르며 부모님 말벗을 해드리고 혼자 여행도 다녔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KBS와 함께였다.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아서 최근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입사 15년차인 그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며 KBS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데 우려를 나타냈다. 그동안 KBS에 대해 가져왔던 국민의 불신이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보도로 폭발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이 언론에 기대하는 것은 푸들이 아니에요. 좌익이든, 우익이든 권력에 살랑거리는 애완견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하는 ‘워치독’ 언론을 원합니다. KBS는 어떤가요. 정권의 눈치나 보며 꼬리를 흔드는 푸들 아닌가요.”
그는 이 모든 원인이 이병순 사장 체제에 있다고 봤다. 사장 연임을 염두에 둔 이 사장의 행보가 정권에 대한 비판의 날을 무디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성이 언론의 기본 가치지만 문제는 외치는 슬로건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며 이른바 ‘이병순식 공정 저널리즘’을 비판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공정성이라는 칼날로 무마시키고 약화시키는 것은 언론이 아니죠. 사장도 연임에 연연하지 말고 공영방송 KBS 가치를 지키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KBS 출신 첫 사장으로 후배들에게 면목이 설 겁니다.”
그는 ‘시사기획 쌈’ 제작에 충실하는 한편 선후배들과 만나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진로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또 방송법 등 미디어법 처리 국면에서 역할이 있다면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