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피와 땀으로 얻은 민주화 열매, 방송으로 보답해야죠"
농성 1백일 맞은 MBC PD수첩 김보슬·이춘근 PD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8.12.03 15:36:28
3일로 MBC 노조가 PD수첩 사수를 위한 투쟁을 벌인지 1백일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PD수첩 사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다.
검찰의 강제구인 방침으로 수배 아닌 수배 생활을 겪은 PD수첩의 김보슬, 이춘근 PD. 그들을 만난 날은 MBC 창사 47주년 기념일 오전이었다. 초겨울의 쌀쌀한 햇살을 등지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봄처럼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격렬한 전쟁터에 서 있는 두 젊은 프로듀서의 일상은 조금은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예전처럼 회사를 출입할 때 007작전을 수행하듯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다. 동료들의 “이렇게 다녀도 괜찮은 거야?”라는 짓궂은 농담도 익숙해졌다.
이 PD는 ‘W’ 팀에, 김 PD는 ‘불만제로’ 팀에 둥지를 틀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보슬 PD는 지난달 13일 불만제로에 온 뒤 첫 방송을 내보냈다. 입봉했을 때보다 더 기뻤단다. 이춘근 PD 역시 ‘W’에서 첫 방송을 준비하면서 아이템 선정에 여념이 없다. 역시 방송인은 방송을 할 때 제일 행복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PD수첩에 복귀하고 싶지 않을까. “우리나라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모습을 보면 조만간 PD수첩이 없어질 리는 없겠죠?” 그리고 소수의 약자를 위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초심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미소 뒤엔 결연함이 숨겨져 있었다. PD수첩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여름 한 철이면 끝나겠지 했던 농성은 집에서 두꺼운 옷가지를 보내올 때까지 이어졌다. 개인적 공간과 자유를 잃어버린 생활은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아직도 검찰에서는 불기소에서 불구속입건, 이제는 잦아든 것 같지만 강제구인 방침까지 갖가지 소문이 흘러나온다. 그들 앞을 투명한 벽처럼 가로막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트라우마처럼 문득문득 되살아난다. 문을 열 때마다 “혹시 밖에 수사관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 보호 본능은 떨칠 수가 없다. 내년에 MBC에 불어닥칠지도 모르는 민영화의 유령도 마음 속의 지뢰다. 일부 세력들의 PD수첩에 대한 공세는 MBC 민영화와 방송구조 개편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강철처럼 단련돼 있었다. 두려움은 없었다. 이전에도 조연출로서 황우석 사태를 겪었던 ‘맷집’ 때문만은 아니다. 학창시절에도 예비역 선배들의 무용담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검찰’ ‘수사’ ‘좌파’라는 단어를 30대 언론인이 돼서 접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말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목청이 돼야겠다는, 진실을 알리는 종이 돼야겠다는 양심의 울림이 한층 우렁차진 덕분이다. 그럴 때마다 어깨가 무거워진다.
“우리 언론은 역사 속에서 시민들이 피땀으로 맺은 민주화의 열매를 누리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방송과 기사로 보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