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없어도 적극 참여…스스로 ‘통미봉남’해선 안돼
지난 21일 ‘기자생활 50주년’을 맞이한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72)는 요즘도 1면과 칼럼 등을 넘나들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칼럼 등을 통해 독자들의 ‘지적 욕구’에 대한 배설을 돕고 있다. 이 때문에 김영희 대기자는 기자로서 인기보다는 칼럼 등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늘 앞선다. 24일 오후 3시 중앙일보 3층 대기자방에서 한국 언론 최초로 기자생활 50주년을 맞이한 김영희 대기자를 만났다.
-50년 세월을 기자로서 활동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50년, 40년, 30년이든 시간의 매듭이라는 것이 내가 인식하든, 안 하든 흘러 지나가는 것이다. 사실 50주년 기념행사도 처음에는 관훈클럽에서 준비를 하려고 했다. 예약까지 다 해놓고 준비했는데 내가 도저히 못하겠더라. 언론계 선배들이 많이 계시고, 그분들 역시 언론계 외길을 걸었지만 일찍 사장이나 임원을 하는 바람에 30~40년 만에 끝나기도 했다. 그래서 안 하기로 했는데, 편집국 기자들이 하겠다고 해서 기념식까지 치르게 됐다.
한국 현실에서는 20살에 언론계를 입문하더라도 70살이 되어야 50년이 된다. 이게 쉽지만은 않다. 50년을 채우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주 내지 톱 CEO의 의지와 본인의 노력, 편집국 동료들의 협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편집국 조직이 열려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특권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특권으로 볼 수 있다.
-기자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일단 기자라는 직업이 내 뇌리 속에 조그마한 씨앗이 돼 떨어진 것은 10대 후반이었다. 나는 10대 후반에 당시 불치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결핵성 관절염’을 앓았다.
병원마다 다리를 절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살려고 그랬는지, 1953년 당시 부산에 스칸디나비아 야전병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때 고향 사람이 문병을 왔는데 책을 가지고 왔다. 책 제목이 ‘인생의 행로’였다. 각 직업별로 직업세계를 소개한 책이었다. 그런데 기자 부분을 보니, 외국 VIP가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들이 기자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점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이후 1958년 ‘세계통신’이라는 곳에서 기자를 모집했다. 기자가 되려면 대학을 나와야 했다. 나는 당시 서울 충정로와 을지로입구 근처 영어학원에서 시사영어를 가르쳤다.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유학을 가기 위해 영어공부를 계속 했었기 때문이다.
통신사에서는 시사영어를 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붙었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한국일보에서도 기자를 선발, 시험을 쳐서 들어간 이후 예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숙명이 아닌가,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 관광 중단 등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MB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이 없다. 이게 문제다. 그럼 지금 얘기하는 정책은 뭐냐. 대선 때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비핵·개방 3천’이란 것이다. 그것 하나 밖에 없다.
한국의 대북지원 정책에는 4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비핵화이고, 그 다음은 그것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의 경제성과 지원할 수 있는 재정 능력, 국민적 합의 등이다. 결국 비핵화에 모든 게 연계될 수밖에 없다.
그럼 북한 입장에서 보자. 지금 비핵화 하나만 가지고도 못한다며 난리다. ‘햇볕정책’이나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라는 게 우리가 지원을 해서 비핵화를 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여기에다 ‘비핵화를 하라. 그럼 우리가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안 된다.
북한의 입장은 분명하다. ‘6·15선언’하고 ‘1004선언’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 정부가 말하는 것은 이걸 부인하는 것이다.
결국은 우리 문제인데, 우리 스스로 이상한 대북정책으로 인해 ‘디스서비스’(역서비스)하는 것이다. 이걸 고치자는 것이다. 주도권이 아니더라도 참여를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심각하다.
-지난 5월30일자 칼럼 ‘통미봉남을 환영한다’에서 ‘통미봉남’을 역설적으로 다뤘다.
▲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본보와 인터뷰 하고있다.
칼럼에서는 6·15선언과 1004선언을 받아들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취지에서 썼다. 통미봉남은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북한은 초지일관 한국은 돈만 내고 미국하고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합의 결과를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비용이나 대북화해 정책의 대가로서 주는 돈을 내라는 것이다. 그리고 큰 틀에서 비핵화, 평화협정, 동북아평화안보 등 이런 것들은 미국하고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다.
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통미봉남’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향후 대북 관계에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하는가.
우리가 인간 오바마의 출생배경 등 백그라운드를 봤을 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그런 배경에서 그는 대선 기간 내내 북한 같은 나라, 불량국가들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오바마는 실제로 글로벌 비핵화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 미국 역대 대통령보다 비핵화에 대해 적극적이다. 그리고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다. 강하지만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 충분히 기대를 할 만하다. 핵문제는 성격상 결코 낙관할 수는 없지만 과거 어떤 정부보다 우리의 기대치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와 관련, 어떤 싱크탱크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고 내가 항상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는 내가 칼럼을 쓰거나 강의 등을 위해 취재를 하려면 ‘A’라는 사람을 만난다. 만나서 얘기를 하면 그게 1백% 정책이었다. 나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있었다. 또 그걸 바탕으로 쓰니 틀릴 리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A-1’, ‘B’, ‘C’ 등 서너 사람을 만나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어느 사람을 만나든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최소한도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부지런히 만나지만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A’라는 사람은 적어도 정책중 70~80%를 주물렀다고 하면 지금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20~30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국판 네오콘’으로 불리는 몇 사람이 있다. 북으로 보내는 풍선을 제재하자고 하거나, 유엔 인권결의가 우리에게 마이너스라고 해도 이들은 다 거부한다.
정리를 하면, 하나의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판 네오콘’의 고착된 생각이 대북정책을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의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다. 내가 보면 대통령이 반대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의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단일 사건은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나를 언급할 때마다 63년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특종인데, 그것은 진짜 운이었다. 외신이 들어오는 곳에서 자리를 지킨 덕분이다. 경쟁지 기자는 잠을 잔다고 일찍 들어갔다. 그때 한국일보 체제는 잠자러 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역시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는 것은 71~78년 워싱턴 특파원 생활이다. 그때는 베트남 전쟁이 마무리될 무렵이다. 또 워터게이트, 코리아게이트 등 주요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그 때만 하더라도 중앙일보보다 TBC에 더 많이 나왔다. 그 당시엔 TBC의 독무대였다. 봉두완 씨가 앵커를 맡았던 오전 8시에 방영됐던 ‘뉴스 전망대’의 시청률은 경이적이었다.
-금언이나 모토가 있다면.
‘Go the extra mile’이다. 덤으로 한 마일 더 가라. 예를 들어 무슨 기사가 있는데 3명한테 체크할 것을 5명한테 하고, 6시까지 취재할 것을 6시30분까지 하라는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그것은 내 생산성이 언제까지 유지되느냐가 관건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조차 나 자신을 잘 모르지 않겠느냐. 생산성이 담보되는 한 기사를 계속 쓸 예정이다.
-후배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사회가 어수선하다. 경제사정뿐만 아니라 정권이 10년 만에 바뀌면서 축이 크게 바뀌다보니, 가치관이 요동치고 있다.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 어수선하다.
그러나 기자들은 흔들려선 안 된다. 기자는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일이다. 기자가 흔들리지 않고 관찰을 해야지만 독자나 국민들에게 한국이 가고 있는 방향과 계획을 제시할 수 있다.
또 시대정신에 맞는 독서가 좋은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럴 때일수록 저녁 술자리에 있더라도 비관적이거나 자포자기하지 말고 건설적인 대안을 찾아보는 게, 이 나라의 젊은 지성의 역할이다.
왜냐하면 지나가면 이 모든 게 하나의 역사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이 흔들리지 말고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더 많은 준비와 공부, 토론 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서양의 대선배들의 저술이나 역사책을 보면 많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대담=김신용 편집국장
정리=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