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와 화해할 마지막 기회"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
민왕기 기자 wanki@journalist.or.kr | 입력
2008.11.05 14: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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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익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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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날, 서울 인사동 초입의 한 건물에서 정동익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33년간 모진 세월을 살아온 선배 기자는 온화했지만 또한 단단하고 확고했다. 세월의 더께 때문일 것이다. 그는 동아일보에 대한 여전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리곤 동아일보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했다. 정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다.
-언론계에선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따라 동아일보와 동아투위의 향후 관계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모든 걸 다 바쳤던 언론사입니다. 어떤 형식이든 대화를 하고 싶죠. 동아일보가 국민 앞에 사과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6월 시민들이 “동아일보는 쓰레기”라고 외칠 때, 우리라고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동아가 왜 이렇게 되었나,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죠. 지금이라도 동아일보가 마음을 바꿨으면 합니다. 대화의 문은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간 동아일보사 관계자들과 만나 대화를 한 적이 있으신지요.1980년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서울의 봄, 동아투위와 동아일보사 간의 비공식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장이 해직기자 전원을 받아들이겠다고 했고 대화는 진척되어 갔죠. 하지만 군부(전두환)가 정권을 잡을 것이란 소문이 돌자 한 달만에 대화는 끊겼고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후에도 잠깐 대화가 있긴 했었지요. 그러다 3년 전, 동아투위 위원장이 되고 나서 “30년이 지났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느냐. 풀고 싶다.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이동욱 선생(1975년 당시 주필)을 만났어요. 그가 동아기자 해고 사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만나서 어떤 얘기가 오갔습니까.과거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이 선생은 동아일보 광고가 풀리는 과정에 대해 얘기해 줬습니다. 중앙정보부 양두원 차장과 김상만 사장이 회사 근처 일식집에서 만나 담판을 지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녁에 들어가 아침 6시에 나왔는데, 옆방에 이 주필이 있었다고 해요. 중정에선 동아일보 주식과 인사권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김상만 사장이 화가 나서 나가자 중정 직원들이 잡아다 밀어 넣었고 결국 인사권만 중정에 넘기는 조건으로 타협했다고 들었습니다. 인사권을 넘긴다는 것은 사전 보고, 협의 결정을 뜻하는 것이었죠. 김병관 회장도 만나보려고 했어요. 술 좋아하시는 양반인데,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이면서 얘기하면 통하는 대목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와병 중이라 만나지는 못했지요. 운명하신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김재호 사장도 이 문제를 알고 있다면, 선대에서 있었던 일인 만큼 마무리지었으면 해요.
-동아일보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주위에선 별로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해요. 1년 전, 퇴직한 간부를 만났는데 그 안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요. 뜻있는 젊은 기자들이라도 동아투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나서주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이참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자, 사과하고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돌아가자고.
-동아일보가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요.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적인 소송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아일보와 동아투위는 정리가 되겠지요. 선을 긋는 것으로. 개전의 정이 없다는 것으로. 동아일보에 대한 기대와 바람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저희는 이번이 동아와 화해할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있어요.
-해직기자로서 지금의 언론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정부에 동아해직기자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생각인데, 기대해도 좋은지 판단이 잘 서질 않아요. 다시는 동아사태 같은 언론탄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사과여야 하는데, 지금 나라 사정을 보면 그걸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YTN 기자들이 너무 잘 싸워주고 있어요. 안심하고 싸울 수 있도록 언론계와 시민단체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YTN이라는 마지막 저지선이 무너지면 안돼요. 싸움은 내부 분열 때문에 지는 것입니다. 뭉쳐 있으면 절대 지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가 30년간 싸우면서 몸으로 느낀 것입니다. 겁은 나겠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심하고 겁을 먹어요. 하지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동지애, 동료애입니다. 이 땅에 다시는 동아 기자해고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