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YTN 구본홍 사장 임명, KBS 정연주 사장 해임 시나리오 설, MBC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 등 언론계의 시계가 ‘제로’ 상태다. 언론현업인, 언론시민단체의 저항이 거세다. 민주당 등 야당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민주당은 최근 일련의 사태를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의도라고 규정하고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강도 높게 대처하고 있다. 4선 경력에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 대통령 경선 후보 등을 거친 천정배 의원이 대책위원장을 맡아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그를 만나 최근 언론 상황에 대한 인식을 들어봤다.
-청와대가 KBS 정연주 사장 퇴진 압박, PD수첩 검찰 수사, YTN 구본홍 사장 임명 등 낙하산 인사, 인터넷 통제 등 일련의 움직임의 배후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근거가 있나.
확신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말고 누가 이런 전방위적이고 초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탄압과 방송 장악을 자행할 수 있는가. 각종 기관이 총동원되고 대학 재단 이사회까지 움직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보전염병(Infodemic)’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인터넷 통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어떤 근거가 더 필요한가.
지금까지는 정황이라고 치자.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의 발언은 어땠나. 박재완 수석은 “KBS는 정부 산하기관이다. KBS 사장은 정부의 국정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현행법과도 맞지 않는다. 시대착오적이고 반 헌법적이다. 이를 공공연히 말했다. 뜻이 왜곡됐다면 바로잡든지 책임을 묻든지 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신재민 차관은 대통령 해임권 발언을 두 번이나 했다. KBS 문제는 자기 업무 소관사항도 아니다.
명백히 청와대와 정권의 핵심에서 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방증은 앞으로 더 드러날 것이다. KBS 차기 사장까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나. 추이를 보면 더 명백해질 것이다.
방송장악 배후는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확신
언론인은 물론 온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것
-검찰이 정연주 사장 배임 건, PD수첩 수사로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법개혁을 추진했던 전 법무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보나.
▲ 민주당 천정배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장
개인적으로 곤혹스럽다. 전직 장관으로서 검찰에 애정과 일종의 가족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책임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겠다. 이명박 정권은 검찰이 그 이전 10년 동안 이뤘던 중립성, 독립성을 한 순간에 허물어뜨려 버렸다. 이 정권은 방송과 언론 이전에 검찰을 장악했다. 이미 상당 부분 과거로 돌아갔다. 실망스럽고 통탄스럽다. PD수첩과 KBS 수사가 그 예다. 정부도 결국 쇠고기 협상을 잘못한 것은 자인했다. 그 책임자인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수사를 의뢰했다.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건데 그럼 언론의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건드리게 된다. 이는 신중하고 자제돼야 하는 부분이다. 언론의 비판 기능을 검찰 수사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 기능의 위축으로 간다. 백번 양보해 수사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삼성 특검보다 더 큰 규모로 수사한다. 이례적인 공개질의 형식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한마디로 검찰의 중립성과 신뢰를 무너뜨렸다.
정연주 사장 건도 법원 중재로 국세청과 세무 소송에서 합의를 이룬 것을 문제 삼는다. 최종적 판단은 법원에서 하겠으나 배임으로 보는 것은 이례적이다. 또 감사원, 국세청이 다 나서서 KBS를 뒤지고 있다. 시기적으로도 겹쳐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신뢰를 얻기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정권과 이른바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각 언론기관장에 임명됐다는 지적이 있다. 취재지원선진화방안 등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도 했다. 그런 책임이 있는 민주당이 ‘언론 장악’이라는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에 잘못된 점이 있었다고 지금도 그래도 된다는 논리는 우습다. 그럼 5년 뒤에 정권이 바뀌면 그때 집권당이 마음대로 해도 한나라당은 할 말이 없나?
참여정부 시절 다소 비판 받을 만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차원이 달랐다. KBS 서동구 사장 임명은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임기가 남은 사장을 몰아내려 하지 않았다. 공권력을 동원해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다. 정권이 가진 정상적인 권한 행사를 통해 새 사장을 임명하려 했다. 실제로 한나라당과 많은 보수언론들이 호되게 비판, 일주일 만에 물러나지 않았나.
낙하산 인사 운운하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적어도 구본홍 사장 같은 사람을 임명하지는 않았다. 철학은 어느 정도 공유했을지 몰라도 정권을 위해 물불 안 가릴 사람은 아니었다.
참여정부도 공과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명박 정권처럼 초법적, 전방위적으로 언론을 장악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취재지원선진화방안 등 세부적으로는 비판받아야 할 것도 있으나 큰 틀에서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은 평가돼야 한다.
-정연주 사장 해임이 현실화된다면.
여러 정황상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에 가는 7,8일 이전에 정 사장 해임을 강행하려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올림픽 국면에서 이 문제를 기정사실화할 수 있다. 만일 불행하게도 정 사장이 해임된다면 이는 ‘방송에 대한 쿠데타’다.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몰아내는 것은 쿠데타를 통한 장악과 같다. 언론인 뿐 아니라 전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단연코 결사 항쟁해야 한다.
-그럴 경우 국회 의사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나.
당 지도부가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우리 당은 언론 문제를 민주주의의 최대 현안으로 보기 때문에 그럴 소지도 크다.
-KBS 내에 정연주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경영상 적자를 본 것은 사실이다. 연임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다. 무조건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건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의 주장은 정 사장 개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제도화, 구조화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느냐다.
정 사장 개인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인들께 깊이 생각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강제로 퇴진시킨다는 게 문제다. 권력기관이 정권의 시녀가 돼서 충성을 다하고 국민을 탄압한 역사적 경험에 따라 공권력을 공정하게 만들자는 뜻에서 임기제를 도입했다.
저도 법무부 장관을 할 때 검찰총장 임기제만 없으면 장관이 검찰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법무장관에게 검찰 인사권, 예산권 등이 있다. 총장 임명권이 있으나 임기를 보장해야 하니 장관이 꼼짝 못한다. 임기 보장은 검찰 독립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KBS 사장도 마찬가지다. 임기 보장은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공정성의 핵심이다. 정 사장이 물러나면 이 정권의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장이 될 것인가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 YTN 노조 내 논란이나 언론재단 노조의 임원 사퇴 요구, KBS 노조와 언론노조 및 각 직능단체와 이견 등 언론 현업인 내부에서 여러 가지 혼란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투위나 동아투위 등 언론인들이 1970년대부터 언론의 독립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민주주의를 신장시켜 왔다. 아무리 이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려 해도 결국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군사독재 시절 언론인들이 당했던 희생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권력의 장악 기도를 맞아 당황하고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되면 앞장선 사람들이 해직, 구속당할 수 있다. 냉철하게 보면 그런 사태의 위협이 눈앞에 다다르고 있다. 저로서도 언론인들께 뭐라 말씀드리기 가혹하다. 정치인으로서 정치 틀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능력있는 언론인이 희생을 감수해야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그렇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 기초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언론인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분연히 투쟁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 핵심 간부들만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개인적 어려움을 넘어서 언론인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단결할수록 희생하지 않으면서 이겨낼 수 있다. 민주당도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함께 투쟁하겠다.
-정기국회에서 신문법, 방송법, 국가기간방송법 등 언론 관련법들이 큰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절대 다수의석인 한나라당과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언론 관련법 문제도 민주주의 위협 측면에서 보면 4년 전 탄핵과 궤를 같이 한다. 여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갖고 있다. 국회 내에서 표결로 막아내기 쉽지 않다. 사실 가망이 없다. 정책적 재량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문제다. 물리적으로라도 막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살리는 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우리의 힘은 국민적 지지와 성원에서 나온다. 국민들께서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경각심을 갖고 민주주의를 지켜주시길 희망한다.
-혹시 어느 신문을 애독하는가.
(웃음)주요 일간지는 다 본다. 신문 읽는 시간이 많다. 종이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 확실히 인터넷으로 보는 것보다 편집에 대한 감 등이 다르다. 신문을 열심히 보면 불편한 게 많다. 특히 예전 원내대표나 장관 시절엔 제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 매일같이 있었다. 그러나 감정을 자제하고, 이해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비판이 언론의 주된 사명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