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와 현장의 소통을 생각한다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4.30 1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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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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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언론학회와 방송학회, 광고홍보학회, 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소통과 융합, 그리고 축제’라는 주제로 함께 봄철 정기학술대회를 열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여러 학회가 모여 학술대회를 치룬 이유는, 우선 매년 5월을 전후로 각종 학술대회에 참가하느라 바쁜 회원들의 시간을 절약하고 공부와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예년보다 훨씬 많은 5백50여명이 참가했고 기획세션, 특별세션, 연구분과 세션 등 다양한 세션에서 1백70여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고 하니, 규모 면에서는 실로 대성황이었다고 할 것이다.
기획세션은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를 따라 ‘소통’과 ‘융합’, 그리고 ‘축제’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소통’은 논문쓰기를 통한 학자들 간의 소통과 학계와 현장 간의 소통이라는 두 개의 세션에서 논의되었는데,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후자에 대해서다. 이 라운드테이블에는 대학과 신문사, 방송사에서 열 명이 참여했고, 또 대학교수 중에는 현장경험이 없이 공부만 한 이와 현장을 거쳐 교수가 된 이 등이 고루 섞여 다양한 입장에서 의견을 내주었다.
“과연 소통이나 협력이 필요한가”하는 소통무용론부터, “앞과 뒤가 각기 다른” 가식적 소통론, “학계와 현장 각자 서로가 갑(甲)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신한다”는 상호불신론, 상호불신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기대역할론, 이만 하면 “미국에 비해 한국은 소통이 잘 되는 편”이라는 현실만족론 등이 제기되기도 했다. 언론사 인턴쉽, 학부 교육의 문제, 저널리즘 스쿨의 필요성, 언론사 채용기준의 문제점, 신문방송학과 출신 가산점 부여, 위탁교육 등 대학과 언론사의 경계를 걸치고 있는 뜨거운 이슈들이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거론되었다.
새로울 것도 없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논지는, 단순하게 표현해서 ‘(학계는) 현실을 모른다’는 것과 ‘(현장은) 무식하다’는 것이었다. 먼저 현장에서 학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자. ‘분석은 있되 대안은 없다’, ‘현장과 따로 노는 커리큘럼’, ‘현실과 유리되거나 시차가 있다’, ‘군림한다’, ‘너무 훈수꾼적인’, ‘비책임성, 비현장성’, ‘팩트 없는 비판’, ‘실천적 대안 부재’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반면 학계가 보는 현장은 ‘닫혀있다’, ‘연구에 협력하지 않는다’, ‘거칠고 무례하다’는 태도적 측면과, 현업우월주의와 자사이기주의, 업계이기주의가 함께 지적되었다. 학계와 현장 모두에 겸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통을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두 시간 남짓 이어진 논의에서 나온 결론은 무엇보다 자기 영역에서 각자 잘 하자는 것, 그리고 건전하며 합리적인 상호비판을 하자는 것이다. 기관과 기관, 개인과 개인 간의 교류와 접촉을 늘리는 것도 실제적인 방안으로 이야기되었다.
많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텅 빈 자리 때문이었다. 학계와 현장의 소통을 논하는 이 자리는 열 두 개 세미나룸 가운데 가장 큰 방을 배정받았는데, 참가자 5백50여명은 다 어디로 가고 겨우 서너 명만의 청중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나마 세션 기획자를 제외하면 전무한 수준이었다. 학술대회에서 각자의 관심 분야에 참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따라서 그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연구를 위한 연구’만 하는 학계, ‘대접 받기를 바라는’ 학계가 아니라는 것을 다섯 명의 현장인들에게 보여주기엔 그 날 학계의 빈 자리가 너무나 컸다.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해주신 강남준(서울대), 류춘렬(국민대), 이종수(한양대), 최영재(한림대), 홍은희(명지대), 박선이(조선일보), 손관수(KBS), 신창운(중앙일보), 정길화(MBC), 차병준(SBS)씨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