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통해 차별을 넘다

재일교포 2세 김한일 아사히신문 기자

1987년 아사히 신문 입사후 2000년 기자로 전업
한일월드컵·도하 아시안게임 등 스포츠 전문기자 맹활약


2008 재외동포기자대회에 참가한 김한일 아사히신문 기자는 재일교포 2세다. 김 기자의 부친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1938년경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이주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민족학교를 졸업한 뒤 1987년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일반 회사에서는 조선인을 받아주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근데 아사히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하지 않고 채용을 하더군요.” 제작부에서 근무하다 2000년 아사히의 인력 재배치 과정에서 기자로 전업했다.

그 과정에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아사히신문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의 월드컵 준비상황을 취재할 인력으로 김 기자를 선택했다. 아사히신문에서 한국말을 구사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처음으로 월드컵 경기장, 숙박시설 취재차 한국을 방문했다. 아버지의 고향, 한국땅 을 밟은 순간, 감회가 남달랐다고 했다. 민족학교를 졸업한 뒤 10여년이 넘도록 일본말만 사용했던 그는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실컷 듣고 말했다.

김 기자의 담당은 스포츠, 그 가운데서 축구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에서 열린 몇몇 게임을 취재해 일본으로 송고했다. 2005년에는 일본 2부리그에서 J리그로 승격한 코흐팀을 전담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에 선정된 박태환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인민 루니’ 정대세와 인연도 각별하다. 정대세 선수가 일본 프로축구단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할 때 김 기자와 상의할 정도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다.

그는 게임 결과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뒷이야기를 주로 쓴다고 했다. 전문용어는 알기 쉽게 풀고, 독자들이 게임을 상상할 수 있도록 이미지화하는데 주력한다. 그는 이번 기자대회에서 전세계에서 온 동포기자들을 두루 만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최근 아사히신문 국제편집부로 옮겼다. 아사히신문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 협약을 맺어 발행하고 있는 영자신문 ‘The Asahi Shimbun’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족 실태를 보도한데 이어 심양, 연길, 연변 등을 돌며 중국 야채, 화훼류 실태 등을 취재했다.

김 기자는 스포츠부로 복귀를 희망한다. 스포츠에서는 남녀, 장애인과 비장애인,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주말엔 꼭 J리그 경기장을 찾는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스포츠도 사람이 하는 운동 아닙니까. 사람 냄새, 인간 냄새가 나는 기사를 쓰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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