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삼성 시시비비 '독자증가'…진보적 가치 드높이겠다"
새 미디어환경 차별화된 콘텐츠로 돌파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 입력
2008.04.02 15:36:01
“옆집 쌀가게 아저씨라고 생각하면 될거에요.” 인터뷰 준비를 위해 고광헌 사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한겨레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탈한 첫 느낌도 그렇고, 인터뷰 내내 이른바 높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권위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한겨레에 대한 높은 국민적 신뢰에 자부심이 넘쳤다. 그러면서 한겨레의 가치, 한겨레 콘텐츠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우리 시대에 제목소리를 내고, 여론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제대로 전달하는 신문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천생 ‘한겨레맨’이었다. 고 사장은 “창간 20돌인 올해를 기점으로 한겨레는 가장 앞서가고 독자들과 정서적으로 조우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실어 나르는 매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다. 고 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장실에서 있었다.
-고등학교 교사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한겨레에 입사했다. 한겨레에 들어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선일여고에서 교사를 하다 필화사건에 연루됐다. 1985년 무크지 ‘민중교육’에 88서울올림픽을 평양과 공동 개최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고 썼는데 그것이 국보법 위반이 됐다. 안기부에 끌려가 장기구금을 당하고 교단에서도 쫓겨났다. 이후 민주교육실천협의회,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 내가 했던 일은 주로 기관지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 한겨레를 만든 주역들인 송건호 선생, 정태기, 최학래 선배들을 알게 됐고, 1988년 5월 한겨레가 창간하자 합류했다.
-올해는 한겨레 창간 20년이다. 20년의 의미와 함께 미래 청사진을 말해 달라.지난 20년 한겨레 역사는 1975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강제해직 당한 1세대 선배들, 1980년도 해직기자들, 군사정부의 전횡에 기자양심을 팔지 않겠다고 한겨레로 온 기자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한 역사다. 이들 선배들이 바친 헌신이 한겨레의 20년 역사를 관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힘이 한국사회 안에서 한겨레를 산으로 키우고, 강으로 키운 밑거름이 됐다. 20년이 지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신문은 이미 올드 미디어 취급을 받고 있다. 뉴미디어서 시대가 다가온 만큼 거기에 맞춰 새로운 미디어 전략을 짜야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문의 방송 겸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겸영이 허용되는 상황은 옳고 그름을 떠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미디어 환경이다. 새 미디어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낙오할 수도 있다. 민첩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한겨레는 창간 20년을 기점으로 가장 앞서가고 독자와 정서적으로 조우하며 21세기적으로 조명하고 품어야 할 진보적 가치를 실어 나르는 매체로 거듭날 것이다.
-한겨레는 줄곧 신문 방송 겸영 허용에 대해 여론의 독과점 등의 문제를 들어 반대해왔다. 그런데 고 사장께서는 겸영에 대비해 대응하겠다고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데. 겸영 허용에 따라 발생하는 여론독과점 문제와 현실적으로 허용됐을 때 펼쳐질 미디어 환경에 대한 준비는 따로 봐야 한다. 끝까지 반대만하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미디어로서 한겨레는 생명은 다한다. 국민적 여망을 모아 생겨난 한겨레가 그렇게 가면 안 된다. 한겨레는 지속돼야 한다. 지속하되 훨씬 더 진보되고 발전된 형태로 비전을 갖고 나가야 한다. 바뀌는 미디어 환경에 도전해 돌파해야한다. 그것이 한겨레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나 주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겸영에 따른 여론 독과점 문제는 법적, 제도적으로 규제할 수 있게 미디어로서 노력을 하면 된다.
-한겨레도 방송에 진출하나. 준비는 어느 정도 됐나.신문 방송 겸영이 나오면서 대부분 머릿속에 방송을 생각하지만 우리는 당장 거기까지 갈 수 없다고 본다. 방송에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돈만 쏟아 붓고 만다. 현재로서는 방송이 비즈니스 모델이 될지 불투명하다. 또 미디어 융합시대를 맞아 플랫폼이 많이 생기는데 그것들이 제대로 된 여론을 반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는 해야 한다. 방송시대가 본격화하면 그에 맞춰 적절한 시기에 뛰어들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은 한겨레가 만든 차별화된 콘텐츠로 독자들과 만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와 제휴했던 ‘노드 사업’이 그 일환이다. 한겨레는 진보적이고 참신한 콘텐츠들을 신문과 인터넷에 싣고, 동영상으로 제작해 케이블 TV나 공중·지상파 등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전형적 구현방식이다.
-그렇다 해도 한겨레의 현재 자본력으로 방송에 진출하기가 버겁지 않나. 맞다. 지적한대로 한겨레는 자금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한겨레가 갖고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는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한겨레의 풍부한 인적 인프라에서 나오는 기획력은 최고급이다. 기획과 인적 네트워크, 여기에다 적절한 규모의 내부투자를 하면 비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외부의 투자가 따라온다. 그런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나의 경영적인 계산이다.
우리에게는 한겨레가 만든 콘텐츠는 믿을만하다는 무형의 자산이 있다.
-재임 기간 경영 목표가 궁금하다. 구체화된 수치가 있나. 한겨레에는 한겨레플러스, 시네21, 한겨레앤, 한겨레출판 등 자회사가 4개 있다. 온오프 뉴스룸 통합 차원에서 만든 한겨레앤을 빼놓고 3개 회사의 실적이 좋다. 본사 못지않게 이익을 낸다. 한겨레플러스는 연매출 1천억원 이상, 시네 21, 한겨레출판은 각각 1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우량기업으로 바꿔 놓겠다. (사장에) 당선된 뒤 다각도로 검토했는데 무리한 목표가 아니었다. 자회사들이 본사에 시너지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영상 수지방어뿐만 아니라 새롭게 조성되는 뉴 미디어 환경에서 한겨레식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수익원을 많이 개발하려고 한다. 한겨레만이 갖고 있는 차별화된 기획과 콘텐츠를 가지고 다양한 플랫폼에 판매할 준비가 되어있다. 상당 부분 경영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들이 실제로 기획되고 실행되고 있다.
-삼성광고 중단이 4개월째다. 경영에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해는 지지난해보다 매출을 4억~5억원 더 올렸다. 올해도 1~2월에 삼성 광고가 빠진 부분을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 메웠다. 광고국뿐만 아니라 제작, 판매, 사업국 쪽이 열심히 뛴 덕분이다. 한겨레는 지난 20년간 숱한 어려움 속에서 지켜온 회사이다. 위기가 생기면 각기 자리에서 문제를 돌파하려는 노력이 나타난다. 삼성은 70년 그룹 역사상 최악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동안 성장을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하면서 알게 모르게 축적된 적폐가 오늘날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 한겨레로서 위기에 빠져 동분서주하는 삼성을 바라볼 때 안타까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우리 국민들이 볼 때 납득하고, 그만하면 됐다, 좀 더 나아가면 감동까지도 오는 그런 대안을 내놔야 한다. 삼성은 글로벌기업으로서 기준이 있다. 그런 기준에 맞는 대안을 내놓는다면 광고 문제는 합리적으로 잘 풀리리라고 본다. 1차적으로 삼성특검이 끝나는 전후로 해서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물론 특검이 기소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재판 단계로 가는 거니까, 삼성도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지 않겠나. 삼성은 특검이 끝나는 시점과 맞물려 기업경영 차원에서 모든 것을 재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3월부터 신문값을 3천원 올렸다. 절독률은 얼마나 되나. 신문 절독률은 거의 없다. 구독료를 올린 이후 어필하는 전화가 7통 정도 왔을 뿐이다. 되레 자발적 구독 신청자가 예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명박 정부 인사 파행이 났을 때 한겨레는 시시비비를 가려 썼다. 다른 신문사는 그게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반사이익이 나는 것 같다. 어디어디 신문 보는데 이번 보도로 실망해 한겨레를 보겠다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은 더 그렇다. 2년 전 자제 독자관리 데이터베이스(DB)프로그램인 한마루를 개발했다. 본사가 개인독자들의 DB를 모두 갖고 있다. 여러 개 신문을 겸업하는 작은 지국을 빼고 3백50개 가까운 지국의 독자들을 모두 DB화해서 본사가 관리한다. 한 부당 제값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겨레가 제일 높을 것이다. 진성독자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한겨레는 5년 이상 꾸준히 구독하고 있는 장기독자들이 다른 신문에 비해 월등이 많다. ‘삼성 광고 중단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신문값 3만원 받아라. 그리고 더 자유롭게 쓰라’고 격려하는 독자들이 많다.
-최근 기자들의 이직이 많다. 한겨레도 생계형 이직이 많은데.경영책임자가 직원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3~4년 전만해도 보너스가 1백~1백50%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웠다. 지난 3년 동안 조금씩 임금을 현실화해 작년에 보너스를 4백%로 맞췄다. 올해는 5백%를 제시했다. 나머지 1백%+알파는 12월 경영 상태를 봐서 할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임협을 열어 해나갈 생각이다. 올해는 긴축경영으로 가려고 한다.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고, 당장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설비는 뒤로 미룰 생각이다. 그 배경에는 삼성그룹 광고문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비롯된 국제경제의 불투명성이 가미됐다. 1~2월을 보면 광고가 결코 좋지 않았다. 경기 예측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으로 본다. 그런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긴축체제로 가려고 한다.
-한겨레 문화 가운데 고쳐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남 탓 안하는 것이다. ‘내가 혹시 잘못하지 않았나. 내가 실수해가지고 저렇게 되지 않았나’고 생각하는 조직문화를 한겨레 저변에 넓히고 싶다. 각 실국 간, 실국 안에서도 소통이 잘돼야 한다. 소통은 결국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는데 네 탓이라고 하겠나.
대담=본보 김신용 편집국장
정리=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