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비판과 사실 보도는 기자의 사명"

소설 '백그라운드 브리핑' 펴낸 중앙 김종혁 부에디터


   
 
   
 
현직 사회부 데스크가 3백 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을 써냈다. 그것도 시경캡, 법조팀장, 정당반장, 워싱턴특파원 등 언론사에서 가장 정신없다는 곳에서만 골라 일했다. 이건 근무 태만이었거나 작품이 함량 미달일 것이라는 기자 특유의 ‘삐딱한’ 시선이 발동했다. 그러나 중앙일보 김종혁 사회 부에디터와 그의 소설은 화살을 모두 간단히 피해갔다.

김종혁 부에디터는 혈흔이 낭자한 취재 일선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권력의 이면과 기자들의 꿈틀거리는 현장을 옮겨놓은 정치추리소설 ‘백그라운드 브리핑’(중앙북스)을 내놓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민기 기자. 그는 한 로펌 젊은 변호사의 살인 사건을 취재하면서 갖은 역경 속에서도 권력의 어마어마한 음모를 폭로한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사실을 전달하려는 기자의 정신.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요즘 흔치 않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부에디터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평범한 기자의 상이라고 말한다. “김민기 기자는 이상적 모델이 아닙니다. 이념과 상관없이 현실에서 사실을 찾아내고 보도하면서 번민하는 모습은 이 세상 어느 기자도 경험하는 것이죠.”

그는 여러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왜곡 묘사되는 기자들의 모습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보도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은 완벽한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기자도 조직인이기에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기도 한다. 다만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는 부조리에 대해서만은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하지만 ‘백그라운드 브리핑’은 권력의 법칙을 제일 강한 톤으로 고발한다. 권력은 산호초처럼 아름답지만 섣불리 다가서면 상처를 입는다. 권력은 그만큼 조심스럽게 행사돼야 한다. 언론의 불변의 사명은 그런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이라는 덕목 또한 환기시킨다.

“주변 사람들이니까 다들 좋은 소리만 해주지요.” 그의 겸양에도 불구하고 ‘백그라운드 브리핑’은 특유의 빠른 호흡과 실감나는 전개로 적지않은 호평을 받고 있다. 습작의 경험도 일천한 현직 기자가 이정도의 소설을 써냈다면 다섯수레의 책을 읽은 문학소년 출신이 틀림없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전형적인 사회·정치부 기자로 지금까지 달려온 그에게 텍스트적 자산이란 여름휴가 기간 일주일 만에 탈고해낸 ‘마감은 생명’이라는 속도의 철칙과, 20년간 쉬지않고 기사를 써온 훈련량이었다. 덧붙여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현장을 체험한 기자로서 ‘특권’이었다.

“차기작이요? 이젠 대선이 코앞입니다. 일단 사회부 데스크로서 자기 할 일을 다 해야죠.”
책상에 수북이 쌓인 일간신문과 메모에서 볼 수 있듯 역시 기자가 본분인 그의 꿈은 ‘언론의 신뢰 회복’이다. 신문에 나오면 곧바로 사실과 등치됐던 시대는 옛 무용담에서 나올 뿐이다. 언론이 스스로 저지른 잘못도 많았다. 논평은 다양할수록 좋지만 보도에서는 객관성을 엄수해야 한다는 게 데스크로서 그가 느끼는 철학이다. “언론이 신뢰를 잃으면 사회는 아노미에 빠집니다. 건강한 사회를 일구려면 언론의 신뢰회복이 가장 절실합니다.”

그는 우리 언론계에 좀더 많은 김민기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때론 갈등하고 불법도 저지르지만 기자로서 큰 원칙을 잃지 않으려는 건강한 기자가 언론계의 다수가 될 때 김민기는 ‘아침이슬’의 신화 속에서가 아니라 비로소 우리 기자들 삶의 일반명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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