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폐합으로 빼앗긴 명성과 자존심 되찾겠다"

정년단축·인력 감원 등 구조개선 자구노력…흑자구조로 돌아서



   
 
   
 
국제신문이 지난 9월1일 창간 60주년을 맞았다. 부산일보와 함께 부산지역 양대 언론사의 하나로 꼽히는 국제신문은 한 때 지역에서 최고 부수를 자랑하던 신문이었다. 하지만 군부독재시절 언론통폐합으로 사실상 폐간, 국제신문의 명성도 잊혀졌다.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재탄생한 국제신문은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며 변화를 꾀했지만 브랜드를 살리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IMF 바람을 타고 찾아든 경영난은 국제신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올해 초 단행된 구조조정은 이같은 과정 속에서 곪아버린 생채기를 잘라내는 작업의 하나였다. 국제신문은 60주년을 맞아 지난 9월 대대적인 신문 개편을 진행하고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새기고 있다. 지난해 11월1일 취임한 송석구 사장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10월26일 부산 연제구 중앙로에 자리한 국제신문 본사에서 그를 만나 각오와 비전을 들어보았다.



-국제신문이 창간 60주년을 맞았다. 의미는 무엇이며 향후 1백년을 준비하기 위한 비전은.
국제신문은 부산을 대표하는 신문사다. 질곡의 한국 언론사의 한 축을 이루기도 했다. 지난 1947년 창간해 한강 이남의 최고부수 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 롯데가 인수한 이후에도 36년간 부산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다.

군부시절 부산일보와 통폐합되면서 폐간의 아픔을 겪었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89년 재창간 됐다. 하지만 다시 경영을 맡게 된 롯데가 1997년 이후 재벌의 언론사 소유 금지로 손을 뗀 다음부터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6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국제신문의 목표는 당연히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다.
국제신문은 60주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신문지면 개편을 단행했다. 우선 디자인을 가장 크게 바꾸었다. 젊은 독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고급스러우면서도 읽기 쉬운 편집을 도입했다. 뉴스는 지역에 더욱 가까워지고자 했다. 중앙 및 세계뉴스도 강화했다.

-동국대 총장 출신으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신문사 경영에 어려움이 많을 텐데.
지난해 11월 처음 국제신문에 발을 디뎠다. 대학총장을 할 때와는 차이가 많았다. 대학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대학발전에 활용하면 됐다. 반면 신문사는 돈으로 제조한 상품으로 돈을 벌어 와야 했다. 우선은 상품 자체가 좋아야 하고 그 다음 사장이 광고주들한테 신문을 잘 홍보해 팔아야 한다. 적극적인 경영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문사 경험이 전무하다고 해서 경영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경영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두 분야가 같다. 복잡한 의사결정 기구를 가진 대학에서 경영을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신문사를 일사분란하게 이끌 수 있다고 자신한다.

-국제신문의 경영난이 심각하다고 들었는데 해결책이 있는가.
언론계 전체가 위기다. 그중에서도 신문사, 특히 지역 신문사의 어려움은 말로 다 하기 힘들다. 국제신문도 마찬가지다. 돈은 나가는데 들어오는 곳은 한정돼있다.

국제신문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구조조정이었다. 올해 2월까지 구조조정을 통해 모두 50~60명 가량의 인원을 감축했다. 정년은 58세에서 55세로 낮췄다. 이를 통해 수지가 맞는 상황을 만들었다. 지금은 조금씩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구조에 들어서고 있다. 앞으로 수익구조를 개선해 흑자를 더욱 창출해 나갈 계획이다.

직원들이 전사적으로 회사의 경영난 해결을 위해 나서고 사장의 뜻을 받아들여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기자들의 수가 줄어든 만큼 업무에 대한 중압감이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문의 인력은 위쪽이 넓은 항아리 구조를 하고 있다. 차장이 반 이상으로 상층부 인력이 많고 젊은 기자들이 적다. 이에 대해서는 기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정년을 58세에서 55세로 조정한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법이었다. 앞으로도 경력기자 채용이나 수습 정기 채용 등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복지정책은 인력구조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진 뒤에 순차적으로 도입할 생각이다. 기자 재교육과 연수는 언제든지 기회가 된다면 되도록 보낼 것이다.

기자가 줄어든 만큼 업무 부담은 높아진 게 사실이다. 부국장급 기자들도 젊은 기자 못지않게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치단결로 힘을 내주고 있어 신문의 질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부산·경남 지역은 신문 ‘난립현상’이 없는 등 타 지역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산만의 특수성이 감안된 결과다. 과거 6·25 당시 대부분의 중앙지들이 부산으로 몰려왔다. 긴박한 시대였지만 중앙을 경험한 부산의 자존은 단단해졌을 것이다. 다른 중앙지들이 모두 올라간 뒤에도 이들과 겨뤘던 국제신문, 부산일보는 역사성과 전통성, 전국성을 가지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부산지역만의 야당지향성, 보수성, 자존성이 보태져 지역신문을 지켜야 한다는 독특한 문화가 조성됐을 것이다. 사실 부산지역 양대 신문사는 이러한 여론에 큰 힘을 받고 있다. 양적, 질적으로 중앙에 뒤지지 않는 신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정 독자를 유지하고 지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주된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산지역 신문 부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역민들이 ‘동반자’‘생활의 일부분’으로 우리 신문을 여길 수 있도록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라이벌인 부산일보와의 차별화 전략이 중요할 것 같다.

부산일보와는 건강한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군부시절 부산일보와 통폐합되면서 국제신문이 사라졌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서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지르기 위한 고민도 항상 안고 있다.

60주년을 기념해 단행한 개편에는 부산일보와의 차별화 전략도 상당부분 감안됐다. 일례로 디자인(편집)의 변화는 혁신에 가까웠다. 기사의 둘레를 감쌌던 박스 선을 과감히 없앴다. 고딕체도 없앴다. 글자체도 조금 줄였고 제호도 바꿨다. 흰 글자체에 녹색바탕을 넣어 평화로우면서도 진보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A4 크기의 사진 컷을 넣는가 하면 중대사안인 경우 전면을 기사로 채우는 시도도 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를 많이 참고했다.
기사에서는 지역 친밀도를 높이면서도 단독기사를 많이 생산하려 하고 있다.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사나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올해 국제신문은 부산의 도시디자인, 관광벨트, 지역공단 타 지역유출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조선 산업 부지의 문제점을 제기,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캠페인성 기사를 쓰기도 했다. 부산지역 기업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는데 주력했다.

부산은 노령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실버 면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는 부산 청년실업 문제를 다루는 지면도 만들 예정이다.

부산시민을 위한 사업은 여러 방면으로 펼치고 있다. 올해는 특히 ‘환경에너지산업전시회’를 처음 개최했다. 첫 행사였는데도 방문자가 3만 여명에 달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문화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매월 열리는 클래식 공연 ‘한낮의 뉴 콘서트’는 국제신문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 외에도 상하반기 열리는 마라톤대회, 한자쓰기 대회 등 여러 행사를 진행 중이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등에 대한 활용 계획은.
대형 특집 기사를 만들어 낼 때 지역신문발전기금은 큰 도움이 된다. 지역신문의 경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 두 기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신문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예산 지원을 할 필요성이 있다. 메이저 신문만 독주하는 체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두 기관의 지원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대선이 두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보도를 위한 준비는.
기본에 충실한 보도를 지향할 방침이다. 매니페스토에 동참하는 한편, 공정보도를 위해 자체 보도 검증 시스템도 가동하겠다. 편집국에서는 교수·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을 이미 꾸려 놓았다. 범여권 후보가 단일화될지 지켜본 뒤 적정 시점에 자문단을 활용한 보도를 해 나갈 것이다. 주요 후보자 인터뷰는 이미 진행한 상태다. 또 후보자 토론회 등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뉴미디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복안은 무엇인가.
신문들이 방송이나 인터넷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IPTV는 이미 준비단계에 있고 최근에는 60돌맞이 UCC(사용자제작콘텐츠)콘테스트 등을 열기도 했다.

지난 2003년에는 향후 인터넷신문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시민기자제’를 도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민기자는 10월 현재 1천7백42명에 달한다. 이중 한번이라도 기사를 송고한 사람은 4백 명,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민기자도 2백 명이나 된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마련된 시민기자 섹션을 통해 기사를 노출하고 있으며 일부 좋은 기사는 직접 지면에 싣기도 한다. 지면에 실릴 경우 지역신문발전기금을 통해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최우선 과제인 경영난 극복을 이룬 후에는 좀 더 다양한 뉴미디어 정책을 도입할 생각이다. 방송법 개정이 진행된 뒤 구체화할 일이지만 DMB 방송 참여나 저출력 방송 진출 등도 고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별도의 팀을 꾸려 다양한 논의를 거치고 있다.

-기자협회에서는 ‘언론인공제회’를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자는 더 이상 특권 계층이 아니다. 예전엔 권력의 제5부라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생활인·직업인’에 가깝다고 본다. 생활이 어려워 지역신문에서 메이저 언론사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 기자들에게도 생활의 안정, 노후 보장 등이 중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언론인공제회는 매우 반길만한 소식이다. 심도 있게 연구하고 정부와도 긴밀한 협조를 이뤄 현실화되길 기대한다.

-경영철학과 함께 덧붙이고 싶은 말을 해 달라.
‘들은 귀는 천년을 가지만 말한 입은 3일 간다’는 말이 있다. 좌우명처럼 생각하는 글귀다.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 대해 한 비난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평생을 곱씹지만 정작 타인을 비난한 사람은 이를 곧 잊는다는 의미다. 언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남에게 다정스러운 말을 건네 창조적 발전을 이끌어야지, 단순한 비판만 일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영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모두 통용할 수 있는 글귀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언론계에 매체가 너무 많다. 비슷한 목소리 혹은 편파적인 주장을 담기 보다는 개성을 가진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할 줄 아는 언론이 발전하길 바란다. 기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회사를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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