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진정한 보람 느꼈습니다"

'레나테 홍 할머니' 사연 알린 중앙 유권하 기자


   
 
  ▲ 중앙 유권하 기자  
 
남북정상회담에 모든 기자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지난 일주일, 중앙일보 유권하 기자는 그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두 정상의 만남을 지켜봤다. 유 기자는 1953년 북한 유학생 홍옥근씨와 결혼해 아들 둘을 뒀으나 북한 정부의 유학생 송환으로 46년 동안 생이별의 아픔을 겪은 독일인 레나테 홍 할머니의 사연을 알려 세계적 주목을 이끌었다. 그의 노력으로 꿈일 듯 했던 이들의 만남은 이제 현실의 세계로 들어왔다. “북한 당국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상봉 가능성이 높습니다. 빠르면 올해 안에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레나테 할머니를 특정하지는 않았으나 ‘독일에 있는 이산가족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안다”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유 기자가 레나테 홍 할머니의 이야기를 접한 것은 지난해 여름 베를린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옛 동독 지역 도시 예나의 한 한국인 유학생이 할머니의 애절한 사랑을 알려준 것이다.

낯선 한국인 기자를 만난 할머니는 처음에 별 기대를 걸지 않았다. 당시 할머니는 북한 방문을 수소문하고 있던 중이라 유 기자는 성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사화도 미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14일 중앙일보에 첫 기사가 나간 뒤 상황은 달라졌다. 바로 그날 DPA통신이 중앙의 기사를 인용 보도하면서 독일 언론들의 취재요청이 밀려왔다. BBC, AP, 로이터 등 세계적 언론도 ‘세기의 순애보’를 전했다.

유 기자는 그때부터 할머니의 아들이자 도우미가 됐다. 독일 정부, 적십자사, 북한대사관에 보내는 청원서를 썼다. 독일 언론사에서 교환기자로 연수할 때 친분을 쌓은 독일 기자들에게 기사화를 부탁, ‘디 벨트’ 등 독일 3대 일간지에 할머니의 사연이 보도됐다. 베를린을 찾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할머니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답을 이끌어냈다. 베를린자유대학 평화상을 수상하러 떠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행기에 따라 타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 전 대통령께서 할머니를 격려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올해 2월 평양 독일대사관이 홍옥근씨가 함흥에 생존해있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상봉에 한걸음 다가서기까지는 유 기자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레나테 홍 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바꾼 은인이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기자로서 진정한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며 고마워했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기를 소망하는 레나테 홍 할머니를 뵙고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언론이 사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지도 배웠습니다.” 유 기자는 레나테 홍 할머니 외에도 20여명의 독일인 이산가족이 있다며 이들의 상봉도 돕고 싶다고 한다. 학생 시절부터 관심을 가진 통일과 인도주의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기자가 되는 것도 그의 바람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쓴 기사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밀알이 되기를 원한다. 그 소박하지만 거대한 꿈에 다가선 유권하 기자. 그의 행복한 미소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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