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 강화로 언론노조 통합하겠다"
[기협인터뷰]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7.09.12 15:22:43
방통융합·신문시장 정상화 등 4개 특위 구성
전문성·기층지부 지원강화로 사무처 혁신 추진
‘취재 선진화 방안’ 기자들 참여해 논의 질 높여야 ‘언론노조 개혁모임’의 투표 거부 속에 7일 치러진 언론노조 대의원대회에서 96.2%의 지지로 당선된 최상재 위원장의 취임 첫날은 오전 8시 취재지원선진화방안 대책 회의로 시작됐다. 걸려오는 전화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다. 해결해야 할 현안도 산더미다. 과연 잘 될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사무실에는 핏기가 도는 듯 했다. 여기저기 막힌 혈관을 뚫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최상재 위원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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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재 위원장 (사진제공=언론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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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 투표율이 59.9%였다. 96.2%의 지지를 받았다. 일부 지·본부가 보이코트한 것에 비해서는 꽤 높았다는 평도 있다. ‘반쪽 선거’였다고 평가절하 하는 쪽도 있다. 선거운동 기간 중 입장을 밝혔지만, 산별노조에서 투표 거부라는 방법은 적절치 않다. 선거에 참여해서 의사를 표시하는 게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예상보다 투표율도 높았다. 투표 거부 때문에 위기의식이 공유돼 더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 거부한 쪽과 충분히 얘기하고 풀어나간다면 잘 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본다.
-만약 대의원대회 의결정족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개인적으로 마음은 편했다. 사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투표 거부에 따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대체로 성원은 넘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언론노조 개혁모임’은 최 위원장이 한 쪽에 치우친 인물이어서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루는 데 부적합하다고 반대했다. 제가 한 쪽 편이었다는 건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저는 신학림 전 집행부나 이준안 전 집행부 어느 쪽에도 빚진 것이 없다. 비호하거나 편들 위치가 전혀 아니다. 진상조사소위 위원장이 된 것도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가 인정하고 동의했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면죄부를 주려고 의혹을 덮거나 조사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개혁모임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가. 조합을 보는 시각, 활동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고 본다. 어떤 조직이든 내부에 좌우가 있다. 생산적으로 정책대결하고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활동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조직의 원동력이다. 시각의 차이는 산별노조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데서 생기는 것 같다. 산별노조를 강화한다는 큰 원칙에 동의한다면 갈등을 풀기가 어렵지 않다.
2010년부터 개정 노사관계법이 시행되면 단위기업 노조가 활동하기 대단히 어려워진다. 당연히 산별로 힘을 모아야 한다. 개혁모임은 개별 지·본부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중시한다. 과거 연맹시절 지·본부의 권한과 역할을 떠올리는 것 같다. 우리는 단위노조 역할도 중요하지만 산별 강화가 급선무라고 본다. 그러나 갈등이 있었다고 논의구조나 조직에서 배제한다든가 하는 일은 절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별 틀 안에서 문제를 풀자는 게 기본 입장이다. 이런 저런 오해나 감정에서 비롯된 게 있다면 충분히 몸을 낮추고 의견을 수렴하겠다.
-산별 강화가 통합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방안은. 핵심은 조직, 대상, 활동을 좀 더 중앙으로 모아 힘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각 지·본부로 흩어진 역량을 중앙으로 어떻게 묶느냐가 숙제다. 그리고 조합비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 두번째 숙제다. 이 두 부문에서 다소 이견이 있다.
언론노조가 당면한 과제가 몇가지 있다. 분야별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려 한다. 방통융합, 신문시장 정상화, 대선·총선 공정보도, 비정규직 철폐 4가지가 큰 과제다. 각 지·본부로 흩어져 있는 인력들을 중앙 특위를 중심으로 재편하겠다. 실제 활동 위주로 조합 역량을 다시 짜는 것이다. 산별 강화의 중요한 과정이다.
조합비도 중앙으로 납부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겠다. 분산된 신변안전보장기금을 중앙에서 적립해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대의원대회서 만들었다. 전체 예산을 좀더 효과적 집행할 수 있는 틀도 이뤄졌다
-곧 정치자금법, 횡령 관련 검찰 조사 결과가 발표될 전망이다. 진상조사소위 조사 결과와 다른 내용이 나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이 드러난 K 전 부장 외에) 조합 간부들에게 횡령 혐의를 두기란 무리다. 나름대로 법률적 자문을 했고 상식적으로 조합비를 횡령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만약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면 고민해봐야겠지만 이미 알려진 내용을 횡령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검찰 판단 자체가 유죄 확정은 아니다.
-조합비 횡령은 큰 충격이었다. 상근 활동가들의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횡령 건과 무관하더라도 도의적으로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간 일부가 관료화 됐기 때문에 이런 사태까지 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선거 운동 기간 중에도 사무처의 혁신 요구를 제일 많이 들었다. 실제 언론노조가 그동안 큰 싸움 위주로 조합운영을 하면서 사무처가 해야 될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등한시했다. 사실 오해도 적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혁신에 동의한다. 매너리즘이라든가 조직관리 소홀 등에는 책임을 묻겠다. 다만 언론노조가 일반 기업체 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 일 중심으로 재편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겠다.
사무처를 혁신하려면 전문성 강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노사관계법이 개정되면 사무처의 역량이 산별노조의 힘과 위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전문성과 역량 강화 방안을 강구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이준안 전 위원장의 승리는 사실 예상 밖이었다. 언론노조가 그동안 대외적 정치 투쟁에만 치중한 나머지 기층 조직을 멀리했다는 비판이 주효했다는 평가였다. 언론노조가 (한미FTA 반대 등) 큰 싸움을 많이 해왔다. 사회가 언론노조에 거는 기대도 있다. 피할 수 없었다. 기층과 떨어진 채 중앙 위주의 투쟁을 벌인 게 사실이다. 싸움의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조직 강화에는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우리 역량에 비해서 지나치게 큰 싸움 위주로 간 점은 반성해야 한다. 대외 투쟁을 하더라도 내부 역량 강화와 결속을 전제로 해야 한다.
-언론노조가 그동안 방송사 노조 중심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신문사 지부들은 열악한 환경에 활동마저 부진하다.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김순기 수석부위원장도 신문사(경인일보) 출신이다. 언론노조가 6개월 식물인간 상태에 있었다. 지·본부의 힘을 모으지 못했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수석 부위원장도 신문사에서 내게 됐다. 신문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인력을 중앙에 결합시키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지·본부의 작은 이해보다 중앙으로 힘을 모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중앙 조직으로 전임자를 파견하거나 필요한 인력을 채용해 조직을 강화할 것이다. 그동안 투쟁지부의 해고자 문제 등에 신경쓰지 못했는데 지·본부의 중앙 결합도가 약한 탓도 있었다. 실제 사무처가 지·본부를 관리지원하고 조직적 연대를 꾸리기보다 당면 투쟁에 투입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지·본부가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사무처에 여력이 생기면 거리가 있었던 조직 관리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이 최근 언론계의 가장 큰 현안이다. 언론노조는 현업언론인들의 조직이므로 다른 사회시민단체들과는 달리 접근할 수도 있다고 본다. 권력이 ‘취재선진화’를 내세우면서 취재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나선 것은 옳지 않다. 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제가 던져진 상태다.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브리핑룸 등의 공간 문제는 지엽적이다. 정보공개를 강화하고 취재제한조치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언론관련 단체들이 연구하고 숙의해야 한다. 현재보다 논의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고 가야 한다. 근본적인 언론자유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업 기자들이 나서야 한다. 기자들이 가장 전문가 아닌가. “왜 이런 걸 추진하냐”며 방치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대화의 장에 나와서 설득하면서 논의 수준을 끌어올려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브리핑룸 통폐합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길이다.
-대의원대회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소감에서 ‘적’(敵)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은 ‘적’이 사라진 시대, 누가 ‘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대라고 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적’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천박한 자본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지 못한 천박한 자본이 우리의 적이다. 현실적으로 신문과 방송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이 방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신문시장을 소수의 독점적 신문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신문의 다양성과 방송의 공익성을 짓밟으려 하는 자본과 관료, 그 세력은 우리의 적이다. 그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들과의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