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사랑했던 선배 목이 메입니다
고 이병광기자 추도사
이중근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7.09.04 20:17:00
이병광 선배!
이선배의 숨결이 남아있는 이 정동 땅에서 선배를 떠나보내야 하는 이 순간, 비통한 마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사무치는 아픔에 그저 목이 메일 뿐입니다. 아무리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달렸다고 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이를 하느님이 먼저 부른다지만 선배의 허망한 죽음 앞에는 그저 야속한 생각만 듭니다.
이선배, 선배의 싸늘한 몸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부모 형제와 형수, 두 딸 가연이와 서연이, 그리고 20년 동안 함께 현장을 누비면서 울고 웃던 동료들을 뒤로 하고 간다니 이게 어인 일입니까?
이선배! 육신이 안 되면 혼백이라도 깨어나서 이 정동 땅을 둘러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이선배를 보여주고 가시오. 우리의 아픔 마음을 다독여주고 떠나십시오.
돌이켜보면 우린, 이선배에게 해 준 것은 없고 희생만 요구했습니다.
이선배의 삶은 그 선하고 성실한 품성만큼이나 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해온 일생이었습니다. 함께 호흡했던 후배들에겐 언제든 고충을 털어놓고 의지하고 싶은 바람막이 같은 따스한 언덕이었습니다.
선배는 그 엄혹한 5공 정권 아래서 회사와 신문이 제 구실을 못하던 시절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선배들과 온갖 간난을 헤쳐 오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과 성실함은 많은 선후배들을 편안하고 흐뭇하게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선배를 만난 지도 어느 덧 17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군요. 노조 선배 5명이 해직되어 길거리에 내몰린 매서운 겨울날, 저희 29기들은 사건기자로 현장을 누비는 선배를 처음 만났습니다. 차가워 보이는 눈매에 처음엔 적잖이 긴장했습니다. 그러나 선배는 알고 보니 후배들에게 험한 소리 한 번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습기자 시절 저희들이 붙인 별명이 오죽하면 `천사'였겠습니까.
그러나 선배는 부드러웠지만 또한 천상 기자였습니다. 남에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기에 앞서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신에게 한없이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남보다 먼저 불의에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들지는 않았어도 늘 길이 아닌 곳은 걷지 않았습니다.
1주일 예정으로 갔던 말레이시아 출장이 한 달로 길어져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일, 회사를 떠나려는 후배를 붙잡기 위해 밤새 통음했던 일, 좋은 지면을 만들기 위해 절치부심 길을 모색하던 그 많은 시간들 선배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이 순간,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갑니다.
1998년 일이니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회사가 다시 어려워졌을 때 우린 선배에게 감당하기 힘든 큰 짐을 지웠습니다. 당시 많은 선후배들이 일선을 잠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하필이면 선배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우리 모두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이 아픈 일이었지만 선배는 그 때도 단 한 번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습니다.
선배를 위한 환송식이 있던 날, 우리 정치부원들은 모두 대성통곡했었죠.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선배를 부축하고 상도동 집으로 가면서 저는 작은 다짐을 혼자 했더랬습니다. 선배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새벽에 선배를 이끌고 집에 도착한 저에게 형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 사람이 무슨 잘못을 한 일이 있느냐]고. 전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선배와 형수는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말했죠.
이선배, 그 때 아무나 붙잡고 한 마디 원망이라도 하시지, 왜 혼자 삭이셨나요? 그게 선배의 육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왜 모르셨읍니까? 아마 선배는 그 때 이미 경향신문이라는 회사에 목숨을 바칠 각오였던 게 아닌가요? 그래서 회사에 돌아오고 나서도 회사가 부르는 대로, 쓰고자 하는 대로 늘 군소리 없이 따랐던 것 아닙니까? 이선배, 회사의 요청을 거역할 마음조차 품지 못할 만큼 경향신문을 사랑했던 게 선배의 죄라면 죄입니다.
지난 해 말 선배가 투병을 시작한 뒤부터 간간이 선배를 찾았을 때도 선배는 늘 회사 걱정만 하시더군요. 선배에게 경향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만나고 나올 때마다 눈물을 삼켰습니다.
우린 오늘 경향신문이라는 제단에 이병광이라는 또 한 사람을 바쳤습니다. 마지막 순간, 초점을 잃은 멍한 눈에 고인 눈물을 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이선배! 이제 짐을 내려놓으세요.
선배의 뜻을 남은 저희들이 꼭 이루겠습니다. 최근 경향신문은 독립언론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절치부심하며 몽매에도 그리던 `좋은 신문'이라는 평가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시작인 것을 잘 압니다. 이선배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선후배들과 반드시 선배가 꿈꿨던 일을 이루겠습니다. 천도가 무심하지 않는 한 그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선배도 그 모습을 지켜봐주십시오. 그 땐 함께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어주십시오.
이선배! 선배를 2인칭으로 불러보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군요. 비록 육신은 정든 이 정동을 떠나지만, 혼백만은 여기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라고 저희들은 믿습니다. 당신의 혼이 편안해지도록, 경향신문을 언제나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저희들이 할 일입니다. 그리고 선배의 곁을 지켰던 형수와 생떼같은 두 딸이 장성하는 모습도 저희들이 꼭 지켜보겠습니다.
이선배! 이젠 회사 걱정도 기사 걱정도 접으시고,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놓여나 편히 쉬십시오. 고이 잠드소서. 이선배, 우린 당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7년 9월 4일
선후배들을 대신하여 후배 이중근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