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선진화방안' 혼연일체 돼 막아야"
49년 언론생활 마감한 박기병 전 기자협회장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7.06.13 15:55:32
|
 |
|
|
|
▲ 박기병 전 기자협회장 |
|
|
“이번 정부의 조치는 취재원을 봉쇄하겠다는 겁니다. 기자들의 생명과 설 땅을 없애겠다는 말이죠. 모두가 혼연일체가 돼서 막아야 합니다.”
지난 3월 GTB강원민방 상임고문 직에서 물러나면서 49년에 걸친 언론 인생을 마친 한국기자협회 박기병 前 회장(제10, 17대)은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에 대해 주저없이 대답했다. 박기병 전 회장은 “브리핑룸·기사송고실 통폐합은 지엽적 문제”라며 “국민의 알 권리 수호 차원에서 정부 방안의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요즘 기자들은 “수난 시대를 맞고 있다”고 자조한다. 기자들의 노동환경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기자 전체를 ‘비양심적 집단’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더욱 힘겨운 시절 기자협회를 지켰다. 그가 제10대 기자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던 때는 1973년. 이듬해 동아일보, 조선일보 사태가 일어났다. 수많은 기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그 분들이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걸 인정받았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같은 해 유신정권은 눈엣가시인 기자협회보를 폐간시켰다. 박 전 회장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정부는 당시 정진석 편집실장(현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과 김영성 국장의 해임을 복간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기자협회 해체 불사’로 맞섰다. “정부가 계속 기협을 탄압한다면 차라리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해체하겠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이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담판을 지었다. 국제적 압력을 우려한 정부는 결국 복간을 허용했다.
17대 회장이던 1978~79년 역시 사회적 격동기였다. 당시 기협 회장은 서로 눈치보며 미루는 자리였다. 군사정권의 언론자유 억압에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박 전 회장은 멍에를 스스로 짊어졌다고 말한다. “나서는 사람이 없어 임기를 두 달 연장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박 전 회장은 현역 기자에서 물러난 뒤에는 18년간 언론사 CEO로 일했다. 구로케이블TV와 강원민방 개국에 산파 역할을 했다. 특히 강원민방의 탄생은 그가 언론 인생에서 가장 손꼽는 작품이다. “강원도에서는 민방이 성공할 수 없다”는 주위의 비관적인 전망을 딛고 정부의 허가를 받아냈다. 재허가 탈락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지역사회의 지지를 이끌고 노사의 단합을 이뤄 극복했다.
굴곡진 우리 현대사처럼 그의 삶은 그야말로 ‘산전수전’이었다. 신문에서 방송·통신, 지방에서 중앙, 평기자에서 경영인에 이르기까지 언론인으로서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만큼 후배 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 듯했다. 박 전 회장은 “기자가 점점 ‘샐러리맨’이 돼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 시절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는 사자(使者)’라는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확고한 인생관과 국가관을 닦았습니다. 내 몸과 가정마저 버리다시피 하면서 뛰었지요. 24시간 끊임없이 이 세상의 정보를 어떻게 잡아내고 소화할 지 고민해야합니다. 그게 기자입니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