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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훈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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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의제 아닌 것도 많이 내줘…경제주권·자주권 훼손 우려 상지대 김성훈 총장의 사무실은 치악산을 가슴에 품고 있는 캠퍼스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녹색으로 우거진 교정에는 졸업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학생들의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김 총장 역시 5월의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한·미 FTA 문제는 잠시 잊은 듯 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을 거쳐 농업경제 전문가로 평생을 보낸 노 학자의 눈에 맺힌 깊은 수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한·미 FTA가 타결되고 협정문 공개를 앞둔 지금,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한 칼럼에서 한·미 FTA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한 입장은 무엇인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방 체제의 일환인 도하개발어젠다(DDA),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자·양자간 협상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한·미 FTA같이 졸속으로, 군사작전식으로 추진하는 건 유래가 없다. 이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어떻게 국익을 최대한 지킬 것인가 각론적 연구를 철저히 해서 대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게 무엇을 얻어냈을까. 별다른 연구도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통상 협상에 잔뼈가 굵은 미국과 경험이 일천한 우리나라가 마주했다. 헤비급과 플라이급 선수가 같은 링에서 싸운 꼴이다. 이제 우리 경제가 미국경제에 통합될 위험이 있다. 경제주권과 자주권이 훼손될 염려가 크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가 각종 보조금 등을 통해 농업에 그동안 ‘퍼주기’해왔다고 지적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일수록 농업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만 퍼주기했다고, 과보호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전체 농업생산액 대비 보조금을 보면 우리나라는 5.6%인데 미국은 14.5%다. EU는 21.6%에 이른다. OECD 평균은 15.5%다. 그나마 농업보조금도 직접보조는 얼마 안된다. 융자 형태다. 이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농가파산을 불렀다. 전체예산에서 농업 비중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전인 1994년에 14.2%였다가 지난해에는 5.1%에 그쳤다. 정부는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비한다며 농어촌구조개선사업 명목으로 87조원(김영삼 정부 42조원, 김대중 정부 45조원)을 투자했다. 노무현 정부도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1백19조원을 투·융자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들은 예산, 특별기금 등을 다 합해서 잡아놓은 걸 추가로 투자한 것처럼 생색을 냈다. 우리나라 농업에 ‘퍼주기’ 해줬는데, 지금 경쟁력이 이 모양이냐고 탓할 게 아니다. 그럼 지난 10년간 국방에는 2천8백조원, 교육에는 2천5백조원 투자했는데 F12는 왜 떨어지고 공교육은 왜 붕괴되나.
-한·칠레 FTA 때도 반대가 많았는데 우리 농업이 받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칠레 FTA는 협상 중단까지 감수하면서 양보를 얻어낸 결과다. 중단 기간까지 합쳐 3년2개월이 걸렸다. 규모는 한·미 FTA의 1백분의 1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포도농가 1만2천가구가 문을 닫았다. 정부가 소득의 80%까지 보전해주는 데 이를 신청한 농가가 하나도 없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망한 다음에 보전 신청하는 것보다 먼저 문 닫는 게 차라리 낫다는 걸 알았다. 손해날 줄 아는데 80% 보전 받으려고 끝까지 기다렸다가 이를 신청한단 말인가. 한·칠레FTA를 통한 적자도 제대로 보도가 안되고 있다.
-이번 타결된 협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종훈 수석대표는 A를 받고 싶다고 했다. 왜 그렇게 통상가들이 정치인처럼 구는가. 도대체 뭘 얻었나 따져보자. 반덤핑 규제, 무역구제 부문에서 제대로 얻었나? ‘워킹그룹’을 만들어 이후 다룬다고 하지만 내용을 잘 이야기안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정안하면 안되는 거다. 개성공단제품을 제대로 인정받았나. 거기에 환경노동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미국의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환경노동조건이 적절하지 않으면 절대 인정받을 수 없다. 개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임금을 직접 받지 않는다. 또 사회주의체제 특성상 교육비, 주택비, 의료비를 정부가 다 해주니 그마저 제하고 준다. 그럼 미국 입장에서는 임금착취라고 볼 것이다. 환경조건 역시 미국시각에서 보면 6일 노동에 추가 근로 등도 이뤄지고 있으니 노동착취라 할 것이다. 북핵문제만 조건으로 워킹그룹에서 다루겠다고 했으면 믿을 만하다. 하지만 환경노동조건을 붙인다는 건 사실 안하겠다는 소리다. 반덤핑규제 부문에서는 미국 국내법을 고쳐야 하니 못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1백여개법을 고쳐야 한다. 투자자기업소송제는 우리가 거꾸로 활용하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주는 미국과 FTA협상하면서 왜 끝까지 이를 예외로 삼자고 버텼는가.
의제가 아닌 것도 많이 내줬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은 FTA 의제가 전혀 아니었다. 섬유부문에서 원산지규정 얻어내려고 양보해 버렸다. 협상하기 전에 선결 조건(Pre-condition)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건 의제 대상도, 관세와 관계되는 것도 아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WTO 대상도 아니고 국제수역사무국(OIE) 대상이다.
-그럼 노무현 정부가 왜 이렇게 한·미 FTA를 서둘렀다고 보나.
하나는 미국 편향적인 관료들 때문이다. 이들이 참여정부의 산파들을 밀어낸 데서 시작됐다. 나머지 386은 경제를 모른다. 김병준씨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제대로 말해줄 사람이 없다. 한덕수, 김현종씨의 승리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뉴스메이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5년 9월경 노무현 대통령의 유럽 순방 때 한·미 FTA 추진을 독대해서 설득해 OK를 받아냈다고 했다. 이때쯤 이정우, 정태인씨 등 참여정부 초기의 경제참모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경제부총리였던 한덕수씨는 김대중 정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이때 한·미 FTA의 전신인 한미상호투자협정(BIT)을 추진했다. 하지만 4대 선결조건에 관계 장관들이 반대하자 도중하차 했다. 그러나 한·미 FTA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또 한·미 FTA는 현 정부의 실책으로 위기에 빠진 한미우호관계의 대안으로 추진됐다. 노 대통령은 대선운동 과정부터 불필요하게 미국의 감정을 건드렸다. 미국에게 할 말을 하겠다, 대북정책도 독자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가서는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전통적인 한미우호관계가 위기에 빠졌다는 생각이 미국 조야에 팽배해졌다. 이러다 자신의 임기 말을 맞았다. 이런 상황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한·미 FTA였다.
그리고 현 정부는 지난 임기 동안 해놓은 것이 없다.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이는 미국의 지원없이는 어렵다. 그럼 경제라도 반대급부를 줘야 했다. 만약 진정 국가안보를 위해서였더라면 처음부터 미국감정을 건드리는 빈총을 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경제가 지난 10여년 간 정체된 것은 사실이다. 이를 극복할 계기가 필요하고, FTA가 그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FTA를 비판하는 쪽은 그런 장기적 국가전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게 요즘 나왔던 ‘중국·일본 샌드위치론’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희망은 서비스 분야밖에 없으며, 이를 과감히 개방해서 선진국으로 도약하자는 게 노무현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도 인정했다. 이번 협상에서 서비스 분야가 제일 개방이 안됐다. 중일 샌드위치에서 벗어난 게 뭐가 있나. 자동차가 획기적으로 팔릴 수 있나. 오죽하면 정몽구 회장까지도 FTA 결과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고 신중히 말했다. 미국에 수출하는 섬유제품은 대부분 동남아시아나 외국에서 만든다. 원산지규정으로 우리가 혜택 보는 품목은 5~6개 정도밖에 안된다. 그럼 어디서 이익을 본단 말인가. 우리는 좀더 리얼리스트가 돼야 한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국가전략의 기반을 허물어 버렸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FTA 전략이 맞았다. 우리의 기술력과 높은 수준의 인력으로 자원이 풍부한 주변의 나라들과 먼저 손을 잡아야 했다. 스파링 파트너로 싱가포르, 에프타, 아세안, 일본, 중국 등과 우리 체질을 강화하고 경제의 외연을 확보해야 했다. 그리고 EU, 마지막으로 미국과 진검승부한다는 것이 정부의 초기 방침이었다. 지금은 이 순서를 뒤집어버렸다.
그리고 선진국의 필수조건은 선진화된 농업이다. 미국, 캐나다, EU 등 모든 선진국들은 1백여년에 걸쳐 농업 인프라 구축에 투자해왔다. 농촌이 풍요롭고 평화로워야 도시인과 산업인들의 안식처가 된다.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먹거리를 공급해 주식에 대한 주권을 갖추게 해준다. 패러다임을 선진국형의 농민 살리기 정책으로 바꿔야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우리나라 농업은 땅값이 비싸서 규모화되기가 어렵다. 농촌의 거주성(Amenity)을 도시의 웰빙 요구와 만나게 해서 거기서 농민들이 자산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농촌에 살면서 자연 경관과 환경생태를 유지해주는 대가, 안전식품을 생산하는 대가로 세금을 통해서 농촌을 지원할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다음 정권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역시 이에 대한 심각한 인식이 없어 안타깝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치적이 그린벨트 1차, 2차 지정 및 절대농지 상대농지 등을 통한 농지확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는 아버지의 후광 덕을 보면서 이를 부정하고 규제완화로 풀겠다는 공약을 내걸겠다니 통탄스럽다. 이명박 전 시장은 환경생태계를 희생하고 막대한 재원을 써 후손들이 살 터전을 망가뜨릴 수 있는 대운하 계획을 내놓는 등 아직도 개발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농업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 농촌도 기업화, 선진화시켜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지엽적인 성공사례를 갖고 전체인양 호도해선 안된다. 나는 6년째 한국농업벤처대학의 명예학장을 맡고 있다. 기업농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당면 농업문제에서 1%도 안되는 대안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평야면적 기준 경지면적이 가장 낮다. 생산비의 44%를 땅값이 차지할 만큼 논밭가격이 미국, 호주보다 10~20배 비싸다. 그래서 수입자유화시대에 우리 대부분의 농업생산물 품목은 가격경쟁력에서 한계가 있다. 대안은 친환경유기농업이다. 품질경쟁력, 안전성경쟁력으로 지킬 수밖에 없다.
농민들의 작은 양의 생산으로는 대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가공과 유통분야의 부가가치에 버틸 수 없다. 따라서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경영의 다각화, 범위의 다각화를 통해 해소하도록 하는 게 최근의 흐름이다. 거기에 정부의 직접 소득보상 및 어미너티 확보 등이 필요하다. 우리가 김영삼 정부 이후 엘리트 농정, 요즘 와서 프로농정이라 부르는 기업농업은 대안으로 추진했다가 이미 실패했던 정책이다.
미국농업의 80%, 유럽의 90%가 패밀리팜(가족농)이다. 우리나라는 99%가 그렇다. 기업농· 엘리트농이 필요하지만 전면 대안으로는 물리적, 경제적, 정책적 한계가 있다.
-말했듯이 우리나라 농산물은 비싼 편이다. FTA를 지지하는 쪽이 강조하는 것이 소비자 후생이다. 낮은 가격의 질 높은 상품이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말은 규모화, 기업농화와 마찬가지로 낡은 축음기 판 돌리는 소리다. 한·미 FTA 타결 보도 이후 한달 사이에 소값이 1백~1백50만원이 떨어졌다. 도매가는 떨어져도 소비자가는 요지부동이다. 이게 우리나라의 유통구조다. 높은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 인건비 때문이다. 내부시설 과잉투자도 그렇다. 문제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토지공개념을 계속 주장해왔다.
농축산물은 국내생산기반이 무너지면 더이상 만들어내지 못한다. 농축산물은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일찍이 1975년 식량 파동 등에서 경험했다. 다국적기업은 당시 4배까지 가격을 올렸다. 소비자들만 피해를 봤다. 1997~98년 IMF 때 99% 외국에 의존하던 사료를 달러가 없어 못들여왔다. 결국 농민들이 소·닭을 굶기고 버리고, 우유를 쏟아부었다. 소비자들은 먹거리의 안정성 피해 뿐 아니라 가격 피해를 본다. 장기적으로 볼 때 소비자 후생이 개선되기보다는 더 악화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역사가 보여줬다.
-한·미 FTA는 이미 타결됐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미국 의회는 한국이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비준하지 않겠다고 한다. 협상 결과를 27개 분과로 나눠서 수많은 전문가를 불러 검토시켜 6월말까지 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우리도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면 된다. 찬반을 떠나서 국회가 제대로 문제점을 보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해야 한다. 협정문보다 더 중요한 게 배경문서들이다. 모두 다 공개해서 손익을 계산해보고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국제신인도, 안보 등 비경제적인 이유를 들어서 넘어가면 안된다. 국민의 안위와 경제의 미래가 달린 문제를 독선적으로 처리해선 안된다.
-언론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한·미 FTA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문제도 아니다. 경제문제다. 현재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미래와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다. 일부 ‘무조건 반대파’가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지면 안된다. 편 가르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사실을 보고 대책을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듣게 했으면 한다. 가까운 사람 말만 듣지 말고 쓴소리도 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고치도록 했으면 한다. 오늘의 이슈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고 바로 적처럼 공격한다. 자신에게 반대하면 전체를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이래서야 누가 정부에게 쓴소리를 하겠나.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