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현장서 기자들과 '희로애락'
'수사반장' 최중락 삼성 에스원 고문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7.02.28 15:48:15
전설적인 ‘수사반장’을 알아보는 데 깊게 패인 주름살은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강인한 손매와 눈빛에는 흉악범들을 호령하던 그 시절의 위용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한 삼성 에스원 최중락 고문(78)의 일과는 여전히 새벽 6시반, 경찰청 상황실 출근으로 시작된다. 경찰청 수사연구관 신분이기도 한 최 고문은 하루의 사건사고를 점검하며 오늘도 끝나지 않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인다.
일주일에 두번은 삼성연수원에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 2시간에 이르는 열강에도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하루 꼭 1만보씩 걷습니다. 주말은 골프장에서 보내고요.”
현역 시절은 더욱 화려했다. 1950년 시작한 경찰 생활 동안 서울시경 강력계를 주무대로 ‘포도왕’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1989년 조경수 김태화 연쇄살인 사건 등 굵직한 강력 사건 해결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사건기자 치고 나 안 만났던 사람 없었죠. 기자들과 같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건 현장에 와서 형사들을 도와주던 기자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의 경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기자다. 그의 입에서는 ‘사스마와리’ ‘하리꼬미’ ‘시경캡’ 등 익숙한 용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연쇄살인범 김태화를 검거할 때도 동아일보 기자의 협조가 큰 힘이 됐다는 뒷이야기도 귀띔한다. 과학적 접근보다는 ‘육감’에 의한 수사가 불가피했던 당시, 현장 기자들의 제보와 조언은 큰 힘이 됐던 것이다. 사건 현장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한 경찰 기자들과의 인연을 털어놓자니 한두 시간의 인터뷰로는 어림도 없을 듯싶었다.
그런 최 고문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과거가 있다. 이른바 ‘최영철 기자 사건’. 1965년 동아일보 정치부장 최영철 기자가 의문의 테러를 당했던 사건이다. 그는 최근 출판된 회고록 ‘우리들의 영원한 수사반장’(민중출판사 펴냄)에서 이 사건의 전말을 고백했다.
최영철 기자는 테러를 당하고 차고 있던 고급시계까지 도난당했다. 당시 말로 ‘나까무라’(중앙정보부요원을 일컫던 은어)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최 고문은 테러범이라고 거짓 자수한 전과자를 범인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군사정권 치하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 일생일대 오점”이라고 털어놓았다.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대회 때 벌어진 이른바 ‘용팔이 사건’도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그가 안타까워하는 사건이다. 미온적인 수사를 질타했던 언론보도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수사반장’은 평생 형사이기를 원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천직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 되겠다고 말한다. 여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계속 현장에 남아있고 싶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도둑 잡는 일이니까요.”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