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인간적 해석, 시대 감수성 개척했다

조선일보 떠나는 이동진 기자



   
 
   
“세심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공감대 확산”
97년 ‘시네마레터’로 영화기자 입지 굳혀


조선일보에 연재한 ‘시네마레터’ ‘시네마기행’을 통해 유려한 글솜씨로 영화팬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이동진 기자가 16일자로 퇴사한다. 이동진 기자는 지난달 사의를 밝혔으나 주위에서 강력하게 만류해 사표 수리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자는 자신이 운영하던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에 작별인사를 올렸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아마도 혼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아마도 글을 쓰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동진 기자는 60년대 이명원(한국일보), 70~80년대 정영일(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영화 전문 기자의 계보를 잇는 신진 주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영화기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199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시네마레터’가 큰 계기가 됐다. 당시 문화2부장으로서 이동진 기자를 발탁한 조선일보 오태진 수석 논설위원은 “이 기자가 이전에 담당한 ‘비디오레터’ 등을 통해 그의 능력을 읽을 수 있었다”며 “대중문화 섹션을 준비하던 중,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해보자’는 공감대가 이뤄져 이 기자에게 지면을 맡겼다”고 말했다. 그의 칼럼은 당시 신문에서는 보기 드문 경어체, 서간문체여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딱딱하고 고압적인 평론이 유행할 때 이 기자의 글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을 끌어들여 독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했고,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지식 기반을 보여줘 큰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바이라인만 가리면 누가 썼는지 구별되지 않던 신문계의 영화 기사가 이동진 때문에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었다. 필름2.0 김영진 편집위원은 “매우 세심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썼으며, 영화를 문학이나 다른 장르와 함께 음미할 수 있게 해준 독보적인 문장가”라고 평가했다.

특히 보수적 성향의 조선일보에 이동진 특유의 글쓰기와 스펙트럼이 넓은 인문학적 바탕은 파격적이었다.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는 만화 ‘광수생각’과 함께 조선일보가 젊은 세대를 흡수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이동진 기자의 성공은 문화사적 맥락에서도 분석된다. 영화를 ‘연예의 일종이자 소일거리’가 아닌 ‘문화예술이자 텍스트’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를 적절히 소화해낸 것이 바로 이동진이라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젊은 세대 사이의 영화 붐을 타고 많은 영화비평이 나왔으나 이 기자의 글쓰기는 분석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육성을 담아 전하는 ‘영화에 대한 인간적 해석’이어서 더욱 차별화됐다. 조선일보 박해현 차장(문화부)은 “문학비평으로 본다면 ‘공감의 비평’ 원리를 영화저널리즘에 적용, 공감대를 확산시켰다”고 말했다.

박 차장은 이동진 기자를 소설가 김훈과 비교했다. 김훈 작가와 이 기자는 저널리스트, 스타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각각 80년대와 90년대 젊은 세대의 문화적 키워드였다는 것도 같다. 김훈에게 ‘문학기행’이 있었다면 이동진에게는 ‘시네마기행’이 있었다. 달랐다면 문학과 영화라는 공간의 차이였다. 박 차장은 “한 사람은 문학에서, 한 사람은 영화에서 시대의 감수성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글쓰기 이면에 ‘역사와 교감’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된다. 김영진 위원은 “비평에서 부정보다는 긍정이 대부분이었고 당대의 영화에 개입하고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는 수세적인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동진 기자에게서 ‘기자’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데 아쉬움이 큰 만큼 주위의 기대 또한 크다. 이동진 기자의 성장을 지켜본 조선일보의 한 선배 기자는 그에게 말을 남겼다. “광야를 달리는 말은 마굿간을 뒤돌아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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