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우리 역사 스스로 지켜야죠"

이광표 동아일보 기자


   
   
이광표 기자의 웃음은 맛이 있다. 반가사유상의 미소 같기도 하고, 하회탈의 그것과도 닮았다. 우리 문화재 한 우물을 파온 기자답다.

이 기자의 2006년 마지막 세 달은 특히 분주했다. 가을의 한 복판에서 노조위원장으로서 임금협상을 치렀다. 지난달에는 저서 ‘손 안의 박물관’(효형출판)을 펴냈다. 이달엔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그의 석사 논문이 통과됐다. 논문은 ‘한국 자화상 연구’.

그는 우리 언론계에서 흔치 않은 문화재 전문가다. 1993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 국제부 2년을 제외하곤 줄곧 문화부에서 문화재 부문을 맡았다. 2002년엔 잠시 사회부로 외출했다. 서울시청을 출입했다. 데스크들은 “거기서도 문화재 기사 열심히 써라. 서울시에 문화재가 얼마나 많냐”라고 배려해줬다.

그가 처음부터 문화재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전공은 고고미술사학이지만 대학원에선 국문학을 공부했다. 자연스레 문학 기자를 꿈꿨다. 그러나 전공은 물보다 진했다. 입사 3년 만에 문화부로 발령받은 뒤 문화재 담당이 되라는 엄명을 받았다.

“명색이 전공자인데 문화재를 모르면 되나요.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 공부하고 연구했죠.”

남 몰래 쏟은 노력이 열매 맺은 것은 1997년 기획한 시리즈 ‘문화유산 돋보기 답사’. “동대문은 왜 보물 1호고 남대문은 국보 1호일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문화재는 뭘까?” 고답적인 유적.유물 중심의 기사에서 벗어난 참신한 물음이 거듭될수록 독자와 데스크의 격려는 더했다. 결국 이 시리즈는 1년 40여회에 이르며 동아일보의 인기 연재물이 됐다.

틈틈이 문화재 책도 썼다.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는 ‘손안의 박물관’도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많이 참고해주시면 좋겠다”고 한다. 단순히 책이 많이 팔리기를 바라서일까.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있어야 관심도 생기고, 우리 문화도 지킬 수 있지 않겠어요? 제 노력이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언론도 꾸준히 우리의 전통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북공정만 봐도 그렇다. 평소 관심이 없는데 갑자기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중국은 최초 목판인쇄물인 다라니경이 자기들 것이라고 선전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촬영 저작권은 보수공사에 자본을 댄 일본이 가져갔습니다. 우리가 전통문화에 이토록 무관심하다가는 그들에게 우리 역사를 빼앗기는 시대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문화재를 보면 한 편의 좋은 시를 읽는 것 같다”는 이광표 기자. 그에게 마지막으로 우문(愚問)을 전졌다. “집에 사놓은 문화재 있나요?” 그는 ‘문화재스러운’ 웃음으로 답했다. 장우성 기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