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 상근제 도입·임명 대통령이 해야"

조준희 언론중재위원장

언론중재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조준희 언론중재위원장은 9월로 임기 3년의 절반을 넘어섰다. 언론중재법을 통해 언론중재위의 위상은 크게 강화됐다. 대부분의 언론 분쟁을 해결하는 명실상부한 ‘준 사법기관’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위헌 시비로 헌법재판소에 서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언론중재법의 몇몇 조항을 문제 삼아 재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국내 유일의 언론분쟁해결기관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기에는 넘어야 할 고개가 남은 셈이다. 그 여정을 이끌 언론중재위의 선장, 조준희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중재위원장으로서 지난 기간을 되돌아본다면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지난해 3월 31일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동안 언론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언론중재법 시행이다. 언론피해 구제 전반에 관해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규정이 생겼다. 1981년 우리나라에 언론중재제도가 처음 도입돼 25년간 운용돼오면서 실효성을 인정받은 결과 언론중재법을 시행하게 됐다. 언론중재법을 통해 위원회가 명실상부한 종합적 언론분쟁해결기구로서 재탄생한 것이다.

언론중재법 헌법소원 및 위헌제청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났다. 헌재 결정에 따라 언론중재법 제14조의 ‘정정보도청구권’은 새로운 권리로 확인됐다. 시정권고제도는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다만, 정정보도청구에 관한 법원의 소송절차와 소급효 적용 부분에 대해서만 위헌 결정이 났다. 이 결정에 맞게 법 개정 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언론중재법 시행 이후 정부기관의 신청 건수가 크게 늘었다. 정부기관의 피해구제율이 민간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중재위가 정부의 언론관리 정책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현 정부 들어 국가기관의 조정신청이 증가한 건 맞다. 참여정부 출범 후 올해 10월말까지 정부가 조정신청한 건수는 6백34건이고, 피해구제율은 76.5%다.
국가기관은 뉴스의 주된 생산자이며 취재원이다. 그 만큼 언론의 보도비중이 높고 정부도 관심을 갖고 있다. 또한 현 정권이 과거와 다르다. 언론에 대한 불만을 억압보다는 법 절차에 따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런 요인 때문에 건수가 늘어났다고 본다.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지는 위원회가 대답할 일이 아니다.

정부기관의 피해구제율이 민간에 비해 분명 높다. 신청인은 보도내용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정부는 일반인보다 더욱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다. 언론사들도 정부기관의 신청에 대해서는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임한다. 합의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가기관은 대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건에 비해 언론사가 상대적으로 부담을 적게 느끼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국가기관·개인 고려없이 공정히 처리
일부 언론은 언론중재위가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데 앞잡이 구실을 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우리는 현행법에 규정된 위원회의 준사법기구로서 독립적 기능에 대한 책임감과 의지를 갖고 있다. 국가기관이든 개인이든 신청인에 대한 고려 없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처리한다.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기자들의 이해와 협조를 바란다




   
   
-청구가 쉬워지면서 전체적으로 신청 건수가 늘었다. 또한 새로운 언론중재법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게 됐다. 일선 기자들은 보도를 하는 데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언론중재법 시행 전후 1년을 비교해봤을 때, 언론중재법 시행 이후 1년간 총 건수는 1천97건으로 시행 전 같은 기간 동안의 청구건수(6백78건)에 비해 늘었다.

이유가 있다. 위원회의 관할 사항이 늘어났다. 우선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해졌다. 인터넷신문도 대상에 포함됐다. 구술이나 전자우편 이용 등 신청하기가 쉬워졌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 추세에 따라 국민일반의 권리의식이 향상됐다. 중재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제고되고 있다.

언론 피해 구제는 단일 절차로 일괄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진실이 아닌 잘못된 보도로 입은 개인의 피해가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만 갖고 구제되지 않는다. 손해배상까지 해야 완벽히 구제된다고 볼 수 있다. 가능하면 쉽고 빠른 절차로 한꺼번에 언론 분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손해배상도 우리 위원회의 관할로 하기로 했다.

중재위에서 손해배상을 다루는 게 언론사에게도 좋다. 법원소송으로 갈 경우 치르게 될 시간적, 금전적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언론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중재 절차는 법원처럼 일도양단 식이 아니다. 쌍방과 중재위원이 공통의 이익을 찾아 합의를 끌어내는 게 이상이다. 실제 손해배상을 고집하는 신청인이 많지 않다. 소액으로 합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막상 3자가 앉아 설득하고 대화하면 손해배상은 포기하고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로 마무리되는 편이다. 특히 정부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수는 현재까지 한번도 없다.
사건증가추세에 따라 기자들이 부담을 느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위원회의 목적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 조화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한나라당은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마련, 언론사에 과실이나 고의가 없는 경우에도 정정보도를 강제했던 기존 조항을 없애고 ‘정정보도 청구에는 언론사의 고의·과실이나 위법성을 요한다’고 바꿨다. ‘인격권’ 규정도 삭제했다. 언론사는 후속 보도로 충분한 반론이 이뤄진 경우와 반론 주장이 명백하게 사실과 다른 경우엔 반론 청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정정보도청구권에 관한 현행법 조항은 헌법소원사건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됐다. 그러나 현행 언론중재법의 정정보도청구권은 민법상 정정보도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권리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중재법상 정정보도청구권은 언론사의 고의·과실이나 위법성을 요하지 않고, 정정보도청구의 소 제기로 민법 제764조의 규정에 의한 권리행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민법상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비해 현저히 짧은 제소 기간을 두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론보도청구권이나 민법상 불법행위에 기한 청구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격의 권리라고 인정했다.


중재법 개정은 헌법정신에 반하는 것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정정보도청구의 내용이나 행사방법에 있어 필요 이상으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일정한 경우 정정보도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도 인정하고 있다. 제소기간도 단기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정보도의 방법도 동일 지면에 동일 크기로 보도문을 내도록 해 원래의 보도 이상의 부담을 지우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군다나 잘못된 보도가 고의·과실이나 위법성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전파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오히려 정의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정정보도청구의 고의·과실·위법성을 요한다”고 역개정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사회정의에 반하는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삭제하겠다는 ‘인격권’은 선언적 규정이다. 이 규정은 언론의 자유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이 두 가치를 적절히 조화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또한 이 규정은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공적 기능 및 책임의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헌법이 요구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규정 삭제는 좀 더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후속보도로 충분한 반론이 이뤄진 경우와 반론 주장이 명백히 사실과 다른 경우에 반론보도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한나라당의 법안은 긍정적이다. 현재 각 중재부에서도 후속보도로 충분히 반론이 이뤄진 경우나 반론 주장이 명백히 사실과 다를 경우에는 그 신청을 기각하고 있다.


-시정권고 및 이를 공표할 수 있도록 한 언론중재법 조항이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다. 헌재도 이에 대해 소원을 각하하면서도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는데.
시정권고는 권고적 효력을 갖는 데 그친다. 언론사는 재심신청도 할 수 있다. 혹 권고내용을 불이행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권고일 뿐, 법적 강제성은 전혀 없다. 헌법재판소는 시정권고제도가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 없다며 그 청구를 각하했다.

실제 언론중재위원회는 주로 현행법이 금지하고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시정권고기준을 마련, 공표하고, 그 틀 안에서 위 제도를 엄격하고 신중하게 심의·운용해 왔다.

1981년 제도도입 이후 올해 11월말까지 시정권고 건수는 4천9백63건이었다. 그동안 위 제도의 운영 목표는 언론에 대한 감시·통제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 조화다.
다만, 헌재는 시정권고를 공표할 때 구체적 방법, 내용, 정도에 따라서는 해당 언론사의 명예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적극 수용, 참작할 것이다.


-언론중재법에 포털을 포함시키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포털은 자신들은 정보의 중개와 유통만을 담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위원회는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포털과 관련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를 통해 포털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과 포털로 인한 피해의 구제 등에 관해 활발히 논의했다.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포털로 인한 피해구제도 언론중재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제출해 놓고 있다. 포털이 과연 언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확실한 점은 포털측도 자사의 뉴스서비스로 인한 피해구제에 적극적이고, 언론중재법에 포털을 포함시키자는 의견에 이견이 없다는 것, 즉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포털의 뉴스서비스에 대한 피해구제의 범위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포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다.


-내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이에 따라 시비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책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일 1백20일 전까지 위원회 내에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설치된다.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정기간행물의 선거기사를 심의하고, 선거법에 규정된 반론보도청구를 심의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기사 심의 중재위로 일원화해야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현재 언론중재위 선거기사심사위에서는 정기간행물의 선거기사만 다룬다. 방송은 방송위원회가, 인터넷신문의 선거기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담당한다. 선거기사 심의가 매체별로 분리돼있다. 동일한 기사가 종류가 다른 각 매체에 보도된 경우 피해자는 매체에 따라 신청을 각 기관별로 해야한다. 그 결과 각 기관의 심의 결론이나 결정이 다르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목적이 같다면 이들 세 기구를 일원화 하는 게 좋다. 방송위원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가기관이므로 행정적인 기능이 주가 돼야 한다. 따라서 불공정 선거기사로 인한 피해는 중립적·독립적 준사법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로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번째는 공직자선거법에 나와있는 ‘필요적 전치절차’다. 현행 법에 따르면 선거 기사에 대해 반론보도를 청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언론사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언론사와 합의가 되지 않을 때 심의위원회로 온다. 선거 기사는 당락에 당장 영향을 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구제의 실효성 자체가 없어진다. 절차상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반론보도청구를 이용한 건수가 낮다. 따라서 필요적 전치절차인 언론사와의 협의 과정을 임의 절차화해 피해 구제를 신속하게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나라의 앞날이 걸려있다. 언론보도의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에 비춰볼 때, 공정보도는 필수적이다.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내년 대선에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와 선거보도의 공정성, 진실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 즉 선거의 자유와 공명을 조화롭게 추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위원장께서는 과거 민변 초대 간사를 지내고 각종 시국사건 변론을 맡았으며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법조인으로서 인권 보호와 사회 정의를 위한 노력해오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질문을 받으니 오히려 송구스럽다. 다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노태우 정권 때에 있었던 이른바 ‘말’지 사건 변론이다. ‘말’지는 75년, 80년 해직기자들이 창간 발행한 월간지다. ‘말’지는 당시까지 정부가 각 언론사에 수없이 시달해온 ‘보도지침’의 내용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국가기밀누설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보도지침’의 내용은 그 사실 자체로 충격이었다. 주요 사건이 있을 경우, 정부가 그 보도의 가부나 보도할 경우의 기사 제목, 내용, 크기, 위치 등까지 언론사에 지시했다. 심지어는 어느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할 때 그 전용기 안의 집무실 서가에 많은 책을 두고 읽었는데 그 중 특히 목민심서가 눈에 띈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써달라는 등 희화적인 내용까지 있었다. 정말 코미디였다.
언론 자유가 지나치다는 일부 평가가 나올 정도인 오늘에 비추어 볼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남은 기간 동안 역점을 둘 것은
사실 비상근인 상태에서 중재위원장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중재위 발전에 전력투구하려면 상근제 도입이 필요하다. 한 행정기관의 장관이 중재위원장을 위촉하도록 하는 것도 준사법 기구로서 위상에 걸맞지 않다.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몇가지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

언론중재위는 준 사법기관이기는 하나 토론을 통한 상호 이해로 합의를 도출하는 대국민 서비스 기관이다. 그 기능을 다하려면 좀 더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 그 목적에 근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려면 국민 뿐 아니라 언론사 기자들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많은 질책을 바란다.

프로필
△제11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서울민·형사지방법원 판사
△대한변호사협회 법률구조사업회 회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초대 대표 간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

대담=김신용 편집국장
정리=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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