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와 기자의 직업정체성



   
 
  ▲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학교 수업시간에는 잠을 자고 대신해서 과외나 학원수업으로 학습내용을 대체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서가기에 지식 전달자로서 교사의 역할이 손상되고 있는 증거이다. 의학정보의 범람과 의사 처방전의 공개는 전문정보와 기술에 기반 한 의사의 권위를 낮추고 있다. 이제 환자들은 의료행위를 비교 검색하기 시작했다. 시장 진입이 꽁꽁 묶여 있던 변호사도 그 수가 늘어나면서 최고 전문직으로 불리던 지위가 떨어지고 있다.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해 묵은 노트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간다면, 분명 그 교수의 강의 평가는 평균 이하가 될 것이다. 언급한 직업들은 이른바 전문직 또는 프로페셔널로 분류된다.



여기서 빠진 또 다른 직업은 기자 또는 저널리스트이다. 기자가 직업사회학적으로 전문직인가는 학계에서 논쟁적이지만, 전문직을 지향한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지금 기자들은 학원보다 뒤처진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처럼, 인터넷이나 경쟁 매체에 흠뻑 젖은 수용자들 앞에 무기력해 지고 있다.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정보를 독점하고 시장 진입을 제약해서 낮은 경쟁을 유지해 오던 전문직 영역 전반에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그 가운데 기자들이 당면한 위기는 그 어느 직종보다 커 보인다. 신문열독량과 TV뉴스 시청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용 가능한 대체 미디어와 정보가 많고 이를 이용하는 독자들의 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시대에 나타났던 일반적인 여론 현상 즉, 미디어가 제공하는 사회적 의제가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공중여론 과정도 이미 빠른 속도로 변해서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순간적이고도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언론이 뒤 따라 가는 현상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전문직이 보여주는 노력에 비해 기자들의 위기 극복 전략은 가시적이지 않다. 의사, 변호사, 그리고 교수들은 전공 영역을 더 세분화하고 심층화시키는 방법으로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 비만클리닉이나 부동산 전문 변호사의 등장이 그 예이다. 교수들의 전공 세분화는 말할 나위가 없다.



언론 영역에도 전문기자제가 도입되면서 전문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순환식 출입처 시스템과 위계적 뉴스룸 구조는 대다수 기자를 일반적 상식론자로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직업활동의 내적 동기 중 하나인 성취동기가 부족한 점도 문제이다. 높은 시장 경쟁구조에서 회사의 사적 이해관계가 뉴스에 내면화 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은 기자를 ‘봉급쟁이’로 무력화시킨다. 여기에는 맥락보다는 에피소드가, 분석보다는 사실전달에, 내용보다는 속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언론환경도 한 몫 한다. 그렇기에 연차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능력이 고갈되고 있다고 느끼면서 미래를 불안해하는 기자들이 많다고 한다. 자기개발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대중매체의 위기를 가져온 중요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은 매체 전략에 앞서 새 패러다임에 맞는 기자직의 직업정체성과 노동환경의 재조정에 있는 것 같다. 뉴스는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갈수록 똑똑하고 강력한 뉴미디어로 무장한 수용자와 경쟁을 위해서는 기자는 더욱 프로페셔널 해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프로페셔널 한 것일까? 이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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