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만이 내가 숭배하고 추구하는 가치"

<기협 인터뷰>'기자의 혼'상 수상한 리영희 선생




  리영희 선생  
 
  ▲ 리영희 선생  
 
반듯한 몸가짐, 옷매무새, 번득이는 눈빛과 치밀한 논리. 우리 시대의 거인은 건재했다. 권력은 비록 그의 몸을 부자유스럽게 만들었지만 소나무같은 정신마저 죽이지는 못했다. 존재 그 자체로서 ‘기자의 혼’을 웅변하고 있는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은 26주년을 맞은 5·18광주민중항쟁의 바로 다음 날 이뤄졌다. 마침 잔뜩 찌푸린 먹구름을 헤치고 나온 햇살이 방 안에 가득했다.



다음 달 선생님의 대부분의 저작이 전집으로 출간됩니다.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은데요.

글쎄, 난 언제나 내가 한 얘기는 지나면 됐다고 봐. 뭘 남겨두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거 안 좋아해.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모두 한 시대의 젊은이들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는데 역할을 했으면 된 거지. 이젠 그 당시에 썼던 글들, 감동을 줬던 내용 중 상식이 된 게 절반은 된단 말이야. 난 내가 쓰고 주장했던 것이 누구에게나 상식이 되면 되는 거야. 그게 내가 바라던 바니까. 나란 한 사람은 별 대단한 학문도, 실력도, 사상적 바탕도 없는 사람인데 그만한 역할을 했다는 건 과분한 거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아직 있는걸 보면 아직 그 단계까지 사회가 변화한 건 아닌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의 그런 신념 때문에 다시 모시고자 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기자의 혼’ 상 1회 수상자로 선정되시기도 했는데요.

사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80년 군사정권에 항거한 언론인들을 기리려 날을 정했으면 그런 사람에게 줬어야 하는데…. 난 내가 기자로서나 학자로서나 살아온 얘기 밖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어. 난 국가, 애국심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난 애국주의자가 아냐. 자기 국가, 자기 정부, 자기 사회라 하더라도 진실을 기본 정신으로 삼지 않는다면 난 그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부했어. 진실만이 내가 추구하고 숭배하는 가치야.



첫 기자 생활을 합동통신에서 시작하셨죠. 왜 기자란 직업을 택하셨는지.

난 연락장교였어. 장교는 귀한데 군대는 팽창하고, 그래서 3년을 더 잡혀 군 생활을 7년 했지. 군대는 가장 폭력적인 집단이야. 그런데 견딜 수가 있어? 그때 군대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이 세 가지가 있었어. 하나는 유학을 가는 건데 난 부모를 모셔야했거든. 또 하나는 국회의원 출마하는 거야. 그건 되지도 않는 일이었고. 마지막은 고시 합격이었어. 그래서 고시 제3부(외무고시)를 제대 2년 전부터 공부했지. 그러다 합동통신 기자 모집 공고가 났더라고. 그래서 출발을 외신부에서 했지. 그 당시에 내가 영어, 일본어, 불어를 했으니까. 가능하면 고시에 합격해서 화려하게 해외로 움직이고 싶었지. 외신기자라고 하면 다 외국으로 나가는 걸로 알았어. 지금은 외국으로 꽤 많이 나갔지만 당시는 거의 기회가 없었어.



인류의 흐름 속에 함께 있다는 희열 느끼며 기자생활



기자가 되신 후 고시에 대한 미련은 없으셨나요.

난 국제문제를 다루는데 미쳤던 사람이야. 정말 좋았어. 다른 사람들이 몰랐던 역사적 변혁과 약소국 민중들의 혁명과 각성, 세계 각지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신사조의 흐름, 세계적 역사적인 변혁의 현장에 들어가 있다는, 인류의 도도한 흐름 속에 함께 있다는 그런 희열이 있었어(리 선생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현역 기자 시절 특종도 많이 하셨습니다. 어떤 비결이 있으셨습니까.

나는 우연히 특종을 내는 게 아니라 스터디, 연구를 해서 특종을 만들었어. 기자가 특종을 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지.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얻거나 정보원, 사람을 통해서 빼내는 경우가 있지. 난 달랐어. 사안이 생기면 사전 연구를 하고 외국의 유사한 케이스를 공부했어. 각 대사관의 문헌을 모두 뒤지면서 엄청난 자료를 수집했지. 그리고 현실에 적용시켰지. 한일회담의 예를 들까. 안에서 문제를 중심으로 벌려나가며 찾는 게 아니라 일본이 다른 나라와 유사한 케이스를 어떻게 매듭을 지었나, 밖에서부터 포위해 들어오는 방식을 취했지. 거기에 한국적 특수성을 가미하면서 구조를 짜나가며 확인하고. 그래서 국제문제에 있어서 시각이 남보다 월등히 앞서나갈 수 있었지.



기자로서 생활하면서 학자에 버금가는 심층적 연구를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요.

외향적 성격의 기자는 좀 어려울 수 있지. 난 내향적인 편이거든. 문제를 집요하고 치밀하게 파고드는 성향이야. 하나의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 이론적으로 체계화해서 물증으로 뒷받침하지. 정말 가족도 희생하고 매달릴 정도로 정열을 가졌고, 문제를 추구해 들어가는 집요함과 치밀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지. 난 그 자체를 내 인생, 내 젊음같이 느꼈어.



’검소한 생활, 고매한 사고’ 삶의 모토로 삼아



선생님 시대에는 권력의 탄압이 심했습니다. 요즘 기자들은 광고자본의 압력을 더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언론사의 경영이 광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체념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 문제는 결국 개개인의 세계관과 의식에 달려있어. 개인들이 사회적 책무를 철저히 자각하고 각자의 행동이 합쳐질 때 전체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지 않겠어? 난 굉장히 스토익(Stoic)해. 내 삶의 모토가 검소한 생활, 고매한 사고, 즉 ‘심플 라이프, 하이 싱킹’(Simple Life, High Thinking)이야. 물신숭배적인 삶을 철학적으로 거부하거든. 물질적으로 풍부해질수록 정신적으로는 빈약해져버린단 말이야. 물질적 충족과 인간의 내면적인 충족은 반비례하지. 난 내 일체의 생활을 간소화했어. 당시 국제부장 월급이 3만5천원이었어.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었지. 파트타임 일을 했어. 친구가 하는 오퍼상에서 무역 서류를 써줬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사람들은 처음에 위선적이라고 비웃었어. 그 대신 난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았어. 부당한 압력이나 요청이 들어와도 거부할 수 있었지. 지금 기자들도 애들 학교 보내고 가르치려면 돈이 들겠지. 하지만 자기 생활의 방식을 검소하게 하라고. 인간으로서 내면적 충족과 위대함을 찾아야 해.



최근 일부 언론이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보는 시각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틀린 ‘팩트’가 많고 따라서 논리도 수정돼야 한다, 중국 내부에서도 문혁이 부정이 되고 있다는 것 등이었는데요.

부분적으로 옳은 지적이야. 삼사십년이 지난 후 이제는 자료가 모두 다 밝혀졌어. 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갖춰진 자료를 쓸 수 없었지. 그러나 나는 문화대혁명 자체가 옳고 그르고를 따진 게 아냐. 모택동이 문화혁명이란 형식으로 새로운 사회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던 거야. 물질적, 자본주의적 생활양식 대신 집단적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소개했던 거지. 문화혁명 때 벌어진 문화유산을 부수는 등 반문화적인 행동들이 옳다는 게 아니야. 한국적인, 삐뚤어진 자본주의 가치관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표본으로서 설명을 했던 거야.



선생께선 지식인들의 미국에 대한 시각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최근 정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외정책관이 전개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30년 정도까지는 세계의 패권자는 여전히 미국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미-중이 경쟁하는 불투명한 동북아정세에서 한반도가 안정,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인데요.

그건 비역사적, 비주체적, 자기패배적인 사고지. 미국 자본주의는 범죄적일 수밖에 없는 거야. 우선 근본적으로 부정돼야 할 객체라는 성격규정을 해야 해. 그 전제하에서 우리의 행위를 결정해야 해. 미국은 막강하다, 그러니 따라야 한다는 논리는 물신주의란 말이야. 미국의 지배력은 물질적 힘에서 나오는 거야. 군대지. 우린 그에 못 미치지만 정신적, 도덕적인 순수함과 고결함을 가지고 대해야 해. 물질적 소유에서 오는 악에 근거해서 이익을 본다면 굴욕감을 느껴야 해. 미국이 앞으로 장기간 세계를 지배할 거라는 데 그렇지 않아. 지금 미국 자본주의는 쇠퇴기에 들어서고 있어. 라틴아메리카를 봐. 이제 미국에 대해 민족자존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어. 유럽 선진국들이 이란 문제에서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야. 미국이 세계를 다 지배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삼십년 후까지 지배하리라곤 단정할 수가 없는 거야. 모든 제국주의는 일정한 정점에 오른 다음부터는 변증법적으로 약화되고, 내부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겪게 돼. 로마제국, 청 제국, 대영제국도 그랬지. 우리 지식인들이 그런 비역사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건 문제야.



민중과 사회에 대한 책임 잊지 말아야



기자의 혼이 없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엔 엘리트 지사형 기자가 많았다면 지금은 ‘월급쟁이’가 돼가고 있는 현실인데요. 기자의 혼이란 무엇인지, 기자란 직업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혼란스런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대중적인 계몽 매체가 신문밖에 없었지. 당연히 기자는 역사적 사명이 컸지. 지금은 모든 개개인이 기자가 될 수 있어. 인터넷이 있으니까. 지금은 그런 생각까지 가지지 않아도 돼. 월급쟁이, 되라 이거야. 엘리트적 소수처럼 어깨에 힘주고 자기 역할이 대단한 걸로 착각하지 말라고. 다만 월급쟁이로서도 언론이 민중에 대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잊어서는 안돼.

 

기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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