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목록이 말해주는 것들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송석주 이투데이 생활문화부 기자

최근 예스24와 교보문고가 일주일 간격으로 올해 상반기 도서 시장 결산 자료를 발표했다. 두 자료의 공통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이 강세를 보였고, 유튜브가 책 판매를 견인했으며, 인공지능(AI)과 투자서가 시장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두 자료를 읽으며 눈에 들어온 것은 베스트셀러 목록보다 독자들이 책에 도달한 이유였다. 무엇이 팔렸는지보다 사람들이 왜 그러한 책들을 찾았는지가 더 흥미로웠다는 것. 베스트셀러의 얼굴은 제각각이었지만, 독자들이 책에서 찾은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상반기 베스트셀러 1~3위에 오른 책. 왼쪽부터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5년 전에 나온 소설이다.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른바 ‘스크린셀러’ 현상이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넷플릭스 공개 이후 예스24 기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12배 늘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민음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주목받으며 순위권에 올랐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추천 이후 14주 연속 주간 TOP10을 유지했다.


책이 팔린 배경에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함께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소개했는지가 자리한다. 이제 베스트셀러는 서점 신간 코너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극장과 OTT, 유튜브와 팬덤의 영향력이 책의 수명을 늘리고 있다. 이런 변화는 팬덤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이 교보문고 오프라인 매장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음악으로 시작된 취향의 연결이 독서로 이어진 셈이다.


경제·경영서와 AI 서적의 약진도 눈에 띈다. 특히 예스24 기준 AI 관련서는 상반기에만 1500종 이상 출간됐다. 증시가 흔들리고 기술 변화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을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 같은 시기 니체와 쇼펜하우어, <손자병법>, <명상록> 같은 고전도 꾸준히 팔렸다. 얼핏 상반된 현상처럼 보이지만, 그 출발점은 비슷하다. 사람들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AI 책을 사고, 흔들리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고전을 펼친다. 생존에 필요한 기술과 삶을 해석할 기준을 함께 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도서 시장 흐름을 다시 정리해 보자. 소설의 강세는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이야기와 세계를 향한 수요를 보여준다. 투자서의 성장은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AI 서적의 확산에는 기술 변화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바심이 담겼다. 고전의 역주행은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기준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요컨대 독자들은 정보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할 단서를 찾고 있었다. 책이 제공하는 기술적 효용보다 더 깊은 차원의 ‘재미’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송석주 이투데이 생활문화부 기자.

몇 년 전 김초엽 작가는 <파견자들>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경쟁 상대로 넷플릭스를 꼽았다.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책을 써야 한다는 고민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그가 말한 재미의 울타리에는 강한 자극이나 빠른 전개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독자를 오래 붙드는 이야기의 힘,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상상력, 삶을 다시 성찰하게 하는 질문들이 있다. 사람들이 니체와 AI 책을 함께 사고, 영화를 본 뒤 소설을 펼치는 이유도 이와 맥이 닿아있다.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목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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