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침이 없다’.
총인구 700만 명이 채 안 되는 발칸 반도 동남부 ‘장미의 나라’. 불가리아의 첫인상이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담백한 아름다움. 사람도 그렇다. 섣불리 다가와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을 열면 쉽게 거두지 않는 특성이, 한국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거듭된 외세의 간섭과 개입에도 1300년 넘는 긴 시간 국호를 바꾸지 않을 만큼, 민족 정체성과 자부심이 뚜렷한 점 또한 닮았다.
그래서일까. 한반도에서 8000km 가까이 떨어진 이 나라는 한국기자협회와 가장 오랫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우정을 다져온 국가다. 친숙한 얼굴. 그럼에도 신중하게 어휘를 골라 정중한 인사를 건네는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을, 스네자나 토도로바(Snezana Todorova) 불가리아기자협회장이 만면에 가득한 미소로 반겼다.
◇ 광장
불가리아의 구 수도 벨리코 타르노보(Veliko Tarnovo)에선 지난 11일(현지 시각), ‘저널리스트 광장’(Journalist Square) 개장식이 열렸다. 수도 소피아에 이어 두 번째다.
광장 한편의 고등학교 입구. 타자기가 놓인 원탁과 의자가 설치됐다. 작품명은 ‘기자의 책상’. 상상했던 광장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기록하는 자’들을 기억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하다. 앉아서 기사를 쓰는 ‘기자’가 없다. 자칫 실존 인물과 연관될 것을 우려해 동상을 설치하지 않았다.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의 상징이자, 시민 누구나 ‘빈 의자’에 함께 하기 위해서다.
이 작은 광장은 개장식 시간이 되자 지역 주민을 비롯한 수백 명의 인파로 가득 찼다. 관악대의 연주가 울리고, 한낮의 햇살 아래 구김 없는 얼굴의 아이들이 섰다. 머지않아 삼엄한 경계 속에 일리아나 요토바(Iliana Yotova) 불가리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요 도시마다 저널리스트 광장이 조성되고, 대통령이 직접 찾아 시민들과 함께 의미를 기린다는 것. ‘저널리즘’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과 신뢰가 없다면 어려울 일이다.
마틴 게오르기에프(Martin Georgiev) 현지 지역기자협회장은 한국 기자단의 참석을 소개했고, 대통령은 감사를 전했다. 기자 출신인 요토바 대통령은 공식 행사 후 ‘기자의 책상’에 앉았다. 그녀가 익숙하게 타자기에 손을 얹자, 허전했던 원탁은 주인을 찾았다. 한 명의 언론인으로서, 이 뜻깊은 진경(珍景)을 되도록 오래, 카메라 대신 눈에 새겼다.
저널리스트 광장이 마련된 이 고등학교(성 키릴·성 메토디우스 인문 특성화 고등학교)는 놀랍게도 저널리즘을 특성화 분야로 두고 있었다. 기자를 지망하는 한 여고생이 한국 언론에 인터뷰를 청했다. 깊고 진지한 취재는 긴장감마저 흘렀다. 매일 등하굣길에 마주하게 된 ‘저널리스트 광장’은 이곳의 학생들에게, 자부심이고 ‘미래’였다.
◇ 기자라는 업(業)
궁금해졌다. 불가리아에서 언론의 위치와 현실은 어떨까. 다양한 현지 기자들과 수일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기자의 책무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가리아에서도 기자들의 고민은 다르지 않았다. 가짜뉴스에 맞서 왜곡 없는 사실을 전하기 위한 노력, 그럼에도 신뢰를 부정당하기 쉬운 현실에 대한 고충, 예측 가능한 삶에 대한 선호로 점차 줄어드는 젊은 기자들. 실제 이번 방문에서 만난 현지 기자 대다수는 중장년층이었다. 우리로 치면 국장급 선임 기자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기자는 교사, 의사, 법조인 등과 달리 ‘대를 잇기 힘든’ 직업 중 하나다. 고달픈 업(業)의 특성상, 차마 이 길을 권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단어가 가장 어울리고 또 필요한 직업이다. ‘사명감’.
불가리아의 기자들 역시 마주한 현실에 고뇌하면서도 정직한 사명감을 놓지 못했다. 자신의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백발 기자의 눈빛은, 청년처럼 생동했다.
◇ 동지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신념을 이어온 배경에는 벨리코 타르노보시와 같은 정부의 노력도 한몫했다. 불가리아는 과도 정부 체제와 조기 대선이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상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불가리아의 정치인들 역시 언론을 이용하면서도 혐오했으며, 불신의 프레임에 가두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과 그 존재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니엘 파노브(Daniel Panov) 벨리코 타르노보 시장을 만났다. 벨리코 타르노보의 저널리스트 광장은 당초 ‘세 번째’가 될 예정이었지만, 그는 전폭적 지원으로 순서를 앞당겼다. ‘사람이 없어 4선째 하고 있다’는 너스레로 대화를 연 그는 군인 시절, 기자가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시대의 다양한 얼굴 속에 기자들을 지켜보며, 언론이 없는 사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언론이 존중받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사회라고도 강조했다. 이 또한 너스레쯤으로 여기기에는, 그 표정이 한없이 진지했다.
불가리아 정부와 언론은 서로를 견제함과 동시에 격동의 시기를 함께 헤쳐온 동지였다. 이번 여정 내내 소중한 발걸음을 함께 한 플로브디프 대학교의 캐시 강(Cathy Kang) 조교수는 이 도시의 저널리스트 광장을 이렇게 정의했다. ‘언론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장소’.
◇ 얼굴들
불가리아의 기자들은 그 민족 정체성만큼이나 사실 앞에 굽힘이 없었다. 그들이 치열하게 질문하고 살아냈던 매일은 오늘날, ‘저널리스트 광장’이라는 상징적 공간의 설치로 이어졌다. 끝내 그 헌신을 인정받은 것이다. 기자로서 이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
한국 언론 역시 쉼 없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숱한 부침을 겪었다. 박수받지 못한 무수한 날들. 그러나 다치고 넘어지면서도 무너지는 것은 세우고, 흘러가는 것은 남기기 위해, 기어코 다시 일어서서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가 걸어온 언론 민주주의의 길이기도 하다.
돌아오던 날. 코너를 돌아 우리의 뒷모습 한 점조차 보이지 않을 때까지, 토도로바 협회장은 손을 흔들었다. 그 온기 속에 자연스레, 함께 했던 광장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상상해 본다. 어느 한낮의 햇살 아래, ‘장미의 나라’에서 온 동료들에게 한국의 첫 ‘저널리스트 광장’을 소개하는 순간을.
최지숙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연합뉴스TV 지회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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