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인종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내전의 후유증 탓일까? 내가 만나본 발칸반도의 소년들은 다소 어둡고 조숙했다.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던 그곳. 아버지와 숙부, 또는 먼 친척 가운데 한두 명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걸 본 유년 시절의 체험이 그네들 얼굴에 회색빛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1년 초여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에서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그런데 출발 시간이 자정을 넘겨서다. 이제 겨우 오후 4시.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보스니아 거리엔 10대 아이들 여럿이 격렬하게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깔깔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열네댓 살로 보이는 한 소년에게 물었다.
“여기서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어딜 가보는 게 좋을까? 추천할 곳이 있니?”
한데, 돌아온 대답이 예측을 한참 벗어났다.
“밤 9시가 넘으면 저쪽 골목에 스트립 바가 문을 열어요.”
한국으로 치자면 겨우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쯤일 아이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 “뭐? 어딜 가라고?”라고 되물으며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직도 이걸 ‘조숙(早熟)’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어른에 대한 ‘무례(無禮)’로 봐야 할까 의문스럽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 말은 덧붙여야겠다. 발칸반도의 소년들은 다소 냉소적이고 거칠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10대 특유의 반항심 비슷한 것.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 나라에선 보기 드문 동양인 여행자를 친절하고 호의적으로 대했다.
무슬림의 공동묘지가 있는 사라예보의 야트막한 산. 여성 여행자 두 명이 떠돌이 개에게 위협받는 모습을 본 그 동네 소년들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개를 쫓아주며 여자들을 보호했다. 의젓한 성인 남성 못지않은 기사도(騎士道)였다. 보기 좋았다.
심지어 나는 개를 무서워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산 아래까지 함께 가주겠다”며 곁에서 보디가드를 자처했다. 그 모습이 재밌고 귀여워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나눠 먹은 아몬드와 피스타치오가 고소했다.
북유럽이나 서부 유럽과 달리 동유럽에선 ‘소년 노동자’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여행했을 당시엔 발칸반도의 사회 안전망과 아동 인권보호라는 개념이 덜 성숙된 시기여서 그랬을까?
아무튼 몬테네그로에서도 딱 부러지게 야무진 소년 노동자 한 명을 봤다. 열두 살이라는 아이의 직업은 몬테네그로의 해변도시 코토르에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오가는 버스의 차장.
그 ‘꼬마 차장’은 나이는 어리지만 어엿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를 포함한 버스 안 여행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 버스는 독특하게도 승객이 가진 가방의 크기를 눈대중으로 가늠해 ‘짐값’을 따로 받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1.5유로의 짐값을 내야 하는지, 아니면 무료로 실을 수 있는지의 판별을 바로 그 꼬마 차장이 맡았다.
누군가가 짐값에 항의하며 “내 배낭은 돈을 지불할 정도로 크지 않다”고 말해봤지만 어림없었다.
“길이가 1m가 훨씬 넘잖아요. 게다가 무겁고. 어서 1.5유로 주세요”라고 대꾸하는 꼬마 차장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고 의연했다. 탑승객 중 누구도 소년의 ‘짐값 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걸 ‘프로페셔널’이라 불러야 할까?
꼬마 차장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건 조그만 휴게소에서였다. 아마도 친절한 여행자 하나가 아이스크림을 사준 모양이었다. 버스 뒤편에서 초콜릿이 듬뿍 발린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맛있게 핥아 먹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서야 날 향해 쑥스러운 듯 미소 짓던 꼬마 차장의 푸른 눈동자가 열두 살 아이답게 순정하고 맑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이상스럽게 조금 슬퍼졌다.
입술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손으로 쓱 닦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 ‘엄정한 차장’의 모습으로 변신하던 그 아이는 요즘도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좋아할까?
아드리아해(海)의 빛깔과 닮은 눈동자를 지닌 몬테네그로 꼬마 차장의 안부가 아주 가끔 궁금하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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