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극복 서사는 아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직 이겨내지 못 했고, 뚜렷한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사이다가 아니거든요. 아직도 치료 중이고, 언제 이 병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반드시 어떤 결과를 내야만 하는 걸까요? 그런 생각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안 가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서 더욱 병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남영 중앙일보 기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현장을 취재하며 병을 얻게 된 그는 최근 더중앙플러스를 통해 ‘PTSD와 동거합니다’란 연재를 시작하며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그동안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을 꼭꼭 숨기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치료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참사가 있던 10월이면 항상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지난해는 좀 괜찮았어요. 그때 정말 병원 다니길 잘 했다, 그리고 관련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제 병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요. 실명으로 글을 쓰기까지 고민도 컸는데 내가 공개하면 다른 사람들도 공개하기 쉽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론 이번 연재를 하면서 제 병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치료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김 기자는 연재물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PTSD를 얻게 됐는지, 이후 겪은 감정들은 무엇인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등을 담담히 풀어냈다. 그는 2022년 10월 핼러윈 축제를 취재하다 참사를 목격했다. 사회부 기자로 수많은 사건·사고를 취재했지만 실제 시신을 눈앞에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뺨을 몇 대나 때릴 정도였으니까요. 얼얼한 상태로 취재를 다녔고 그 뒤에 회사 지원으로 병원에도 갔지만 네 번 정도 가고 그만뒀어요. 그땐 특별한 증상이 없었거든요.”
문제가 생긴 건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23년 10월,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였다. 꿈인지, 잠결인지 갑자기 그날 참사 현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PTSD의 전형적 증상, ‘플래시백’이었다. 귀국 후 몇 번 더 같은 증상이 반복되더니 참사 1주기가 다가올수록 불면과 숨 막힘, 헛구역질이 늘었다. “그 시기에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웠고, ‘이태원’이란 단어를 듣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죄책감도 꽤 컸던 것 같아요. 취재가 아니라 심폐소생을 도와야 했지 않나, 그 생각을 계속했어요.”
먼저 변화를 감지한 건 주변 지인들이었다. 그냥 예민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인들은 김 기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강하게 권유했다. 다만 상담과 약물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도 그는 한동안 환자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도, 약봉지도 꼭꼭 숨겼다. 업무 능력을 의심받을까, 더 많이 더 오래 일하고 술자리에도 끝까지 남았다.
“세월호 취재기자 관련 연구를 보면 ‘마초적 직업관’이 PTSD 지속과 연결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사실 코로나19 이후로 문화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자들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는데 실은 지속 가능하진 않은 것 같거든요. 어쨌든 우리는 사회의 아픈 면을 써야 하는 사람들인데 강해지기 위해선 결국 우리의 약한 점도 잘 돌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저도 결국 ‘병원에 다니는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연재를 시작하고 나선 부쩍 말을 거는 동료들이 많아졌다. 정신과 치료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다. “제가 원했던 건데, 사실 정신과 얘기를 좀 편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또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제발 병원에 가시라 권유하고 있어요. 이번 연재 목표도 되게 단순합니다. 한 명이라도 더 병원에 보내자. 저는 병원에 간 게 제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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