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가 보여준 단순한 영화의 미학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송석주 이투데이 생활문화부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관객이 1000만명을 넘긴 3월6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왕과 사는 남자' 광고물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역대 흥행 2위에 올랐다. 국민 3명 중 1명이 봤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이미 1위다. 그 흥행 동력은 무엇일까. 천만 영화는 단일한 요인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진운도 좋아야 하고, 스타 배우도 필요하다. 당시의 관객이 원하는 정서를 대중적인 화법으로 풀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미다. 거기에는 단순성의 미학이 수반된다. 단순성을 깊이가 없다거나 수준 낮은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는 놀랄 만큼 단순한 것이다. 단순함이 드러내는 뜻밖의 표정이 영화의 풍요로움”이라고 했다. 시간을 견딘 영화들은 대부분 아주 적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를 예로 들어보자.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주인공은 여가에 책을 읽고, 올드팝을 듣는다. 식물 가꾸기도 즐긴다. 일을 마치면 목욕탕에 가거나 단골 술집에 들러 맥주를 마신다. 영화는 지금을 충실히 살아내는 한 인간의 성실함에 주목한다. 건강하면서도 단순한 삶의 이미지가 영화 내내 흐른다.


최근 흥행 중인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그렇다. 영화에는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중성미자 추진 등 복잡한 과학이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를 움직이는 힘은 과학이 아니다. ‘당신이 나를 살렸으니 나도 당신을 살리겠다’라는 인지상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애절한 마음이 인상적인 <인터스텔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왕과 사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숙부에 의해 권좌를 잃고 유배지로 온 어린 왕은 황망한 마음에 식음을 전폐한다. 그런 그가 다시 살아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자신을 위해 살뜰히 반찬을 챙기는 백성들의 마음 때문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직접 불러주는 일. 왕이 할 수 있는 가장 당연하면서도 단순한 일일 것이다.


박지훈의 연기도 흥행 동력 중 하나다. 좋은 배우는 ‘입’이 아닌 ‘눈’으로 말한다. 연기의 절반은 눈빛에 있다는 얘기다. 영화에는 단종이 섬에 들어가다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 그는 요란하게 발버둥 치거나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아무 말이 없다. 절제된 연기를 통해 감정을 표출한다. 연출과 연기의 조화다.


물론 단순성의 미학이 영화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요리사 에드워드 리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책을 읽다가 “좋은 요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반드시 간편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단순하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은 적이 있다. 하스미가 역설한 단순성의 미학과 궤를 같이한다. 영화에서 단종이 먹었던 음식은 어수리 나물밥, 다슬기국, 더덕구이 등이다.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소박한 식단이다. 에드워드 리가 말한 좋은 요리의 표본이다.

송석주 이투데이 생활문화부 기자.

뉴스 속 세상은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끔찍한 전쟁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것일까. 난망하기만 하다. 우리가 사랑한 영화 속 인물처럼, <왕과 사는 남자>에 나오는 음식처럼 소박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을 나왔다. 법정 스님은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라고 말했다. 삶이라는 공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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