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차이로 날아간 퇴직금? 국가기관 '364일 계약' 들춰내다

[인터뷰] 이선영 MBC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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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차이로 수백만원의 퇴직금이 사라졌다. 1월1일이 아닌, 1월2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선영 MBC경남 기자는 국가기관의 이 같은 ‘364일 쪼개기 계약’ 실태를 보도해 3월26일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제보자 분이 퇴직금을 어머니 수술비로 쓰려 했거든요. 누군가에겐 큰돈이 아닐지라도 그 분에겐 굉장히 간절한 금액이었는데, 보도 이후 결국 지급받게 돼 굉장히 보람 있는 성과라 생각합니다.”

이선영 MBC경남 기자는 국가기관의 ‘364일 쪼개기 계약’ 실태를 보도해 3월26일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시상식장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이 기자. /강아영 기자

2020년 서울 소재 종합일간지에서 기자 일을 시작, 2022년 MBC경남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현재 사회부에서 사건팀장(캡)을 맡고 있지만 직전 2년간은 노동과 환경을 담당해왔다. 제보 시스템에 올라온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꼼수’ 근로계약 글에 먼저 취재해보겠다 손을 든 이유다. “364일 계약이란 점이 굉장히 특이했고, 단 하루 공백으로 1년 치 퇴직금을 박탈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다만 제 마음대로 꼼수라고 규정할 순 없으니까 일단 다른 곳들은 어떻게 하는지부터 취재했는데, ‘당연히 1월1일부터 계약하는 것 아니냐’며 도리어 의아해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 심층 취재에 돌입한 것 같습니다.”


매번 열심히 취재에 임하긴 했지만 특히 이번엔 더욱 진심을 다했다. 과거 그의 어머니가 공공기관 근로자로 일하며 겪은 불합리한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계약직으로 일하다 다른 곳에 지원하려고 경력증명서를 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상사가 사직을 강요해서 합격 발표가 나기도 전에 사직서를 쓴 일이 있었습니다. 지원한 곳도 결국 불합격 됐고요.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 더 제보 내용에 공감이 갔던 것 같아요.”


진심이 통했기 때문일까, 그의 첫 보도는 큰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2월6일 경남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국가가 뭐하는 것인가”라고 질타한 이후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제보 메일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 기자는 즉각 후속 취재에 착수했다. 수많은 제보 중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쪼개는 수법으로 무려 6년 가까이 근무한 노동자를 퇴직금도 없이 집으로 돌려보낸 의령군청 사례를 포착하고 집중 보도했다. 한편 500여개 공공기관의 채용 공고를 양동민 영상기자와 함께 분석해 다수의 기관들이 11개월 이하의 꼼수 계약 관행을 이어오고 있음도 폭로했다.


파장이 커지자 변화가 일어났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364일 계약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또 올해부터 계약서상 근무 시작일을 1월1일로 소급 수정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꼼수 계약 전수조사를 시작하고 재발 방지 가이드라인 수립을 약속했다. “사실 취재하는 와중에 함양군과 밀양시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거든요. 밤낮없이 산불 생중계를 하고 현장 취재를 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취재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아 스스로도 많이 배웠고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취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쌓여 있는 제보 메일을 틈틈이 열어보고, 향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이 확립될 때까지 후속 취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하잖아요. 이번 취재를 통해 그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소외된 목소리,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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