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비위 밝히려 법원 주변 다 뒤져… 드러난 '사법거래 의혹'

[김성후의 The Journalist]
(15) 한국기자상 받은 고상현 제주CBS 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3월10일 제주시 노형동 제주CBS 보도제작국 C스튜디오에서 고상현 기자가 리포트 녹음을 하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전화 화면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법원 관계자 번호가 떴다. 지난해 6월 어느 날, 퇴근해서 저녁밥 먹고 누워 있는데 걸려온 전화였다.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가 오가다 나온 얘기, “제주지방법원이 뒤집어질 일이 있다.” 그리고 이어진 수화기 저편의 말은 놀라웠다.


판사들이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고 노래방 갔다가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했다? 제주지방법원을 10년 가까이 출입한 기자에겐 믿기 힘든 얘기였다. 평소 판결문 쓰고 사건기록 검토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판사들을 봐온 터였다. “설마 판사들이 그랬을까 싶었습니다.” 10일 제주시 노형동 제주CBS에서 만난 고상현 기자는 말했다.


하지만 제보자가 흰소리할 사람은 아니고, 제보 내용도 구체적이라 취재를 시작했다. 알아갈수록 소문만 무성할 뿐, 언제 어디서 뭘 했는지 불분명한 정보들만 떠돌아다녔다. 그는 법조계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소문의 흔적을 따라갔다. 모 판사가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늘어놓고 다녔고, 일부 언론사 기자들도 인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취재가 이어지며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2024년 6월 말에서 7월 초, 판사 3명에 직원 1명이었고…. 사건의 윤곽이 어느 정도 특정됐다. 보도하려면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했다. 제주지법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제주시청 대학로 일대 노래방 수십 곳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경찰 출동을 확인하기 위해 일선 지구대를 수소문하고, 1년치 112 출동 신고 내역도 샅샅이 뒤졌다. 고 기자는 “후배 이창준 기자와 함께 쥐 잡듯 법원 주변을 뒤졌던 것 같다”고 했다.

고상현 기자(사진 오른쪽)와 이창준 기자. 두 기자는 ‘부장판사들 비위 의혹’ 보도로 제57회 한국기자상, ‘쿠팡, 죽음의 배송’ 연속보도로 제425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김성후 선임기자

◇법원 관계자 제보 3개월 취재
첫 보도는 제보 이후 3개월 만인 지난해 9월30일 나왔다. 제주지법 부장판사 3명이 2024년 6월 법원 인근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갔다가 주인과 시비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법원 감사위원회가 이들에게 품위 유지 위반 경고를 의결한 사실도 확인해 담았다.


보도 이후 여기저기서 제보가 잇따랐다. 제보를 하나씩 추려 검증하고 확인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당시 추석 연휴가 열흘간 이어졌는데 거의 쉬지도 못했다. 이창준 기자는 “신속하게 기사를 내느라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기사 썼던 기억도 있다”며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흘러갔다”고 했다.


두 기자는 추석 연휴 기간 여모 부장판사의 사법거래 의혹을 파고들어 갔다. 여 부장판사가 고교 동문인 변호사와 “오늘 2차는 애기 보러 갈까” “좋죠, 형님” 등의 대화를 나눈 카카오톡 대화 화면을 공개하며 부적절한 접대 의혹을 제기하고, 특히 이 변호사가 구속된 피고인 지인에게 여 부장판사와 친분을 내세우며 형량 거래를 시도한 정황을 보도했다.


“우리가 이 사안만 매달린 게 아니라 매일 해야 하는 업무들이 있거든요. 제보를 처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추석 연휴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어요.” 고 기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도 있어 더 끈질기게 팠다”고 했다.

◇사법거래·불법재판 의혹으로 이어져
9월30일 시작한 제주지법 부장판사들 보도는 음주소동에 머물지 않고 여 부장판사의 부적절한 접대에 얽힌 사법거래 의혹, 오모 부장판사의 불법재판 의혹 등으로 한 달 내내 이어졌다. 오 부장판사는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시민단체 회원 2명의 항소심 첫 공판에서 배석 판사들과 합의 없이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해 재판 절차를 어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됐다.


제주지법 부장판사의 술자리 전말은 이들과 마찰을 빚은 노래방 주인을 인터뷰하면서 퍼즐이 완성됐다. 두 기자는 판사들 비위 의혹 보도를 이어가면서 평일 낮 시간대 문을 연 노래방을 중심으로 탐문을 계속했다. 그러다 한 노래방에 오래 머물렀다. 처음 찾았을 때 긴가민가하는 표정이던 노래방 주인은 다시 찾아가 판사들 사진을 보여주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비틀거리고 눈이 풀려 있어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나 싶었다”고 말했다. 노래방을 찾아내니 담당 지구대가 파악됐고, 경찰관들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근무시간 음주소동이 아닌 고설과 욕설이 난무한 음주난동이었다는 사실을 지난해 10월29일 <[단독] 욕설에 반말까지…음주난동 판사들 사건의 전말>로 보도했다.

고상현 기자(사진 가운데)와 이창준 기자가 3월10일 제주시 노형동 제주CBS에서 이인 보도제작국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제주CBS ‘부장판사들 비위 의혹’ 보도는 제57회 한국기자상을 비롯해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올해의 방송기자상,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상 특별상, 제주도기자협회가 주는 제주도기자상 대상 등을 받았다. 2월27일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서 고 기자는 “수상 소식을 듣고 마냥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면서 “아직 판사들 비위의혹 보도는 끝나지 않았다. 수사의 영역이 남아 있고, 취재가 필요해 기사화하지 못한 내용도 있는데, 이창준 기자와 끝까지 끈질기게 추적하겠다”고 했다.

◇쿠팡 배송기사의 안타까운 죽음
‘부장판사들 비위 의혹’ 보도로 사법부의 부끄러운 이면을 드러낸 고 기자는 쿠팡 새벽배송 기사 고 오승용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공론화했다. 지난해 11월 경찰과 저녁 먹는 자리였다. “기자들은 왜 이거 ‘쿠팡’이라고 안 썼어요?” 제주시 오라2동에서 1톤 탑차가 전신주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다룬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경찰관이 말했다.


“네? 쿠팡 새벽배송 기사 사고였어요?” 고 기자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사고 경위를 취재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어렵게 연락이 닿은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노트북을 두고 왔던 고 기자는 이창준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기자는 얘기를 듣자마자 풋살 연습을 중단하고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지난해 11월10일 밤 10시13분, 쿠팡 협력업체 소속 30대 택배기사의 죽음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고 기자는 보도 다음 날 아침 이 기자에게 유가족 얘기를 들어보라고 지시하고,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쿠팡 제1캠프(물류창고)로 향했다. “승용씨가 사고 직전까지 어떤 환경에서 일했는지 취재하는 건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플랫폼 노동의 열악한 구조에 대해 전국적으로 보도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 승용씨 죽음 이면에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쿠팡 제1캠프에서 만난 동료 기사들은 “기사가 죽어나갈 줄 알았다”, “기사를 연료로 갈아 넣는 죽음의 배송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승용씨는 사망 직전까지 하루 11시간 30분, 주 6일 새벽배송을 해왔다. 그 배경에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 실시간 배송 압박이 있었다.

지난해 4월2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77주년 재일본 4·3 위령제를 취재한 고상현 기자(사진 가운데)가 4·3 재일 유가족과 인터뷰하고 있다. /고상현 제공

◇단순 교통사고로 묻힐 뻔했던 사고
고 기자는 과로노동을 고발하기 위해 쿠팡 배송기사를 동행 취재했다. 물류터미널에서 배송 물건 분류 작업, 수백 개에 달하는 물량 당일 배송과 다회차 배송, 신선식품을 담았던 프레쉬백과 에코백 회수, 반품 처리 등 업무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현실을 <쿠팡 배송기사의 하루…“개처럼 뛸 수밖에 없다”>(2025년 12월8일)에서 고발했다. 그는 “승용씨가 어떻게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는지, 과로노동의 구조적인 모습을 단편적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 기자가 쿠팡 기사들을 만나는 동안 이 기자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처음엔 빈소 입구 조화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말을 걸었고, 유족들은 매일 찾아오는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승용씨 어머니와 누나, 아내를 차례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승용씨 아내는 남편이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을 최우선에 두던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지적장애 중증 판정을 받은 아이 치료비 등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트럭을 사서 쿠팡 배송을 시작했다며 오열했다.


11월 한 달 내내 보도가 이어지며 파장이 컸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심야노동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고, 오씨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제주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고, 국회 청문회에서 쿠팡 임시대표는 유족에 사과했다. ‘쿠팡, 죽음의 배송’ 연속보도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제425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2월26일 시상식에서 이 기자는 “단순 트럭 사고로 끝날 수 있었던 사안인데 상현 선배의 날카로운 시선과 집중력, 그리고 용기 덕분에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이창준 기자가 고상현 기자를 특별한 선배로 바라보는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은 꽤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냈다. 이 기자의 결혼식 때 ‘부신랑’을 맡은 것도 고 기자였다. 부신랑과 부신부는 결혼식 당일 신랑과 신부를 돕는 사람으로 제주도의 결혼 풍습이다. “창준이가 인터넷 매체에 있을 때부터 가까웠어요. 굉장히 열악한 환경인데도 취재를 참 열심히 했어요. 기사 관련해 자주 조언을 구했어요.” 이 기자는 지난해 6월부터 제주CBS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4월2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77주년 재일본 4·3 위령제를 취재한 고상현 기자(사진 가운데)가 4·3 재일 유가족과 인터뷰하고 있다. /고상현 제공

◇‘우는 자와 함께 울라’ 늘 마음에
고 기자는 2015년 제주매일 기자로 시작해 제주일보를 거쳐 2018년 3월 제주CBS로 옮겨 올해 만 10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주로 경찰, 법원, 검찰 등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올해 1월부터 정치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구절을 가슴에 새기고 했다고 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사회의 진보는 사회적 약자들의 울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적 약자는 상대적인 표현입니다.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어떤 현안에 대해선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울고, 기자로서 그 울음이 그치도록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는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2015년 노숙인 자활공동체 ‘넝마공동체’를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보고 죽우란 말이냐>를 제작, 연출하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힘든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2019년 고유정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 문제를 보도했을 때가 그랬다. 그는 피해자 남동생, 범행 현장 인근 주민들, 수사 담당자 취재 등을 통해 경찰이 초동수사 과정에서 유족이 찾아준 주택 CCTV를 확인하고 나서야 강력사건 수사에 나선 사실, 압수수색에서 계획범행의 중요 증거인 졸피뎀 약봉지를 놓친 사실 등의 부실 수사 문제를 지적했다. 보도가 나가고 평소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경찰들이 뒤에서 ‘기레기’라고 욕했다.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느끼고 우울증이 올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고 기자는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은데 한복판에 있었을 땐 너무 힘들었다”며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너무 감사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고상현 기자는 대학생 시절에 노숙인 자활공동체 ‘넝마공동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보고 죽우란 말이냐>를 연출했다. 2013년 당시 서울 가락동 탄천운동장 컨테이너 안에서 자활활동가 고 윤팔병씨와 대화하고 있다. /고상현 제공

고 기자는 기자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다짐한 목표가 있다고 했다. 매년 제주 4·3 관련 기획보도를 내놓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최근 들어 배·보상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4·3은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비극적인 사건이 많고, 우리 사회 모든 인권 문제가 담겨 있는 사안입니다.” 2019년 <대마도가 품은 제주 4·3>, 2023년 <4·3 밀항인 기록-경계를 넘어서>는 그가 동료들과 취재한 4·3 기획보도들이다.


지난해 12월 겨울 어느 날이 떠오른다. 쿠팡 배송기사의 하루를 따라가 봤던 그날이었다. 동행취재를 마치고 헤어지려 할 때 배송기사는 울먹였다. 고 기자는 말 없이 그 ‘형님’을 오랫동안 꼭 안아 주었다. “선량한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아파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로서 더욱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김성후 선임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