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감시 본령 재확인… 지역과 현장, 데이터와 협업 기반 탐사, 국제 분쟁까지 넓은 스펙트럼 보여줘"

[제57회 한국기자상·제16회 조계창 국제보도상] 심사 후기

한국기자상과 조계창 국제보도상은 한국 언론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최고 권위의 상입니다. 이번 심사를 통해 전례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며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들의 열정과 저널리즘 정신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검증과 권력 감시, 약자의 목소리 대변이라는 언론의 핵심 책무는 기술 환경과 플랫폼 구조가 급변하는 시대에도 결코 퇴색할 수 없습니다. 이번 한국기자상 심사는 그 책무를 현실의 변화로 연결해 낸 보도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좋은 저널리즘’을 가려낼 것인지에 대한 공적 점검의 과정이었습니다.


제57회 한국기자상은 2025년 이달의 기자상 후보작 824편 가운데 선정된 78편의 수상작과 새롭게 출품된 17편 등 총 95편(9개 부문)을 심사 대상으로 삼았으며, 조계창 국제보도상은 4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전체 응모작의 0.83%에 해당하는 5개 부문 7편을 한국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 열띤 토론을 거쳐 엄정하게 심사했으나, 대상을 선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대상’이라는 최고의 영예에 걸맞은 작품을 선정하는 데 있어 심사위원회가 그만큼 높은 기준을 적용한 결과임을 밝혀 둡니다.


심사위원들의 중심 화두는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감시와 진실 추구’였습니다. 특히 심사위원회는 단순한 ‘단독’ 여부보다 결정적 근거의 확보와 교차 검증, 반론권 보장과 취재 윤리의 준수, 보도 이후 공적 파장과 제도 개선 촉발, 후속 취재의 지속성과 완결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선정된 작품들은 권력 감시라는 저널리즘의 본령이 여전히 우리 언론의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동시에 지역과 현장의 목소리, 데이터와 협업 기반 탐사, 국제 분쟁의 최전선까지 아우르며 한국 언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줬습니다. 구체적인 수상작과 선정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취재보도부문
△더불어민주당 강선우-김병기 의원 ‘공천헌금 1억원’ 금품 수수 (MBC 김정우·김상훈 기자)

취재보도부문에서는 MBC <더불어민주당 강선우·김병기 의원 ‘공천헌금 1억원’ 금품 수수> 보도가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이 보도는 사안을 단순한 의혹 제기에 그치지 않고, 결정적 물증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핵심은 2022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오간 공천헌금의 결정적 증거, 즉 두 의원 간의 육성 대화록을 입수해 공개한 것입니다. 오랜 기간 공천 과정에서의 금품 수수 의혹이 풍문처럼 떠돌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사실’로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이 보도는 그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냈습니다. 보도 직후 집권 여당 원내대표의 전격적인 사퇴, 관련 의원들의 탈당 및 사퇴, 수사기관의 본격적인 수사 개시 등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걸쳐 거대한 반향이 나타났다는 점은 언론 보도가 실질적인 정치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됩니다.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보여준 직업 윤리에 주목했습니다. 거센 압박 속에서도 반론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며,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세워 철저히 준수했습니다. 당사자의 해명을 충분히 담아내고, 다수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하는 등 저널리즘의 정석을 구현했습니다. 권력 감시, 공적 책임 환기, 제도 개선을 촉발하는 공론 형성이라는 취재보도의 핵심을 고루 갖춘 모범적 사례로 기억될 것입니다.

◇지역 취재보도부문
△납치 살인 피해자 ‘600장의 SOS’ (경인일보 조수현·고건·정선아 기자)
△제주 부장판사들 비위 의혹 (제주CBS 고상현·이창준 기자)

올해 지역 취재보도부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끈질기게 조명한 두 편이 수상했습니다. 두 작품은 지역 언론이 중앙 언론 못지않은 탐사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지역 권력 감시에 있어 지역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경인일보의 보도는 사실혼 관계 남성이 벌인 납치 살인 사건이 ‘단순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피해자가 남긴 흔적은 없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가 녹음 파일과 녹취록 등 600여 장의 방대한 증거자료를 엮어 구속수사를 호소하고 처벌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경찰이 구속영장조차 신청하지 않았다는 충격적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피해자의 절박한 외침이 공권력의 무관심 속에 묻히며 비극으로 이어졌음을 드러낸 이 보도 이후 관할 경찰서장의 공식 사과, ‘친밀관계폭력처벌법’ 발의 및 ‘사망검토제’ 논의 등 제도 변화를 추동했다는 점에서 지역 저널리즘의 빛나는 성과로 평가됩니다.


제주CBS의 보도는 성역으로 여겨져 온 사법부의 부끄러운 이면을 파헤친 탐사 보도입니다. 근무시간 중 음주 난동 제보에서 출발해 로스쿨 강의 중 욕설, 유흥주점 접대에 얽힌 사법 거래 의혹, 즉일 선고 논란 등 비위를 끈질기게 추적했습니다. 더 나아가 정식 징계 대신 ‘훈계’나 형식적 조사로 덮이는 관행까지 밝혀내며 사법부 내부의 ‘제 식구 감싸기’를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연일 질타가 이어질 정도로 파장이 컸으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사법부 독립이 개인의 일탈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없다”는 헌법적 원칙을 사회적으로 환기했습니다.

◇경제보도부문
△韓 원전 수출 50년 족쇄 (서울경제신문 조윤진·주재현 기자)

경제보도부문 수상작은 체코 원전 사업을 둘러싼 기대의 분위기 속에서도 맹목적 찬사에 매몰되지 않고 업계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7개월에 걸친 취재 끝에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공사와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불공정한 계약 조항이 담긴 협정서를 입수·보도함으로써, 보도가 없었다면 묻혔을 국가적 손실 가능성을 공론화했습니다. 보도 직후 대통령실의 진상 조사 지시를 이끌어내는 등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언론의 견제 기능을 각인시켰습니다.


◇기획보도부문
△팬덤권력 (경향신문 팀 주간경향)
△죽어가면서도 “충성” 외친 20살 김도현 일병 (JTBC 이윤석 기자)

기획보도부문에서는 왜곡된 미디어 생태계와 군의 폐쇄성을 각각 파고든 두 편이 선정됐습니다.


경향신문 팀 주간경향의 <팬덤권력>은 극단적 팬덤이 공론장을 장악하는 현실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김어준씨 유튜브 방송이 여권 의제 설정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외면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해 온 레거시 미디어의 현실을 비판하며 언론의 역할을 되물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대에 언론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언론계 전반의 성찰을 촉발했습니다.


JTBC 보도는 군 조직의 폐쇄성과 은폐 구조를 정면으로 겨눴습니다. 산림청 헬기 운용, 구조 실패 과정, 초기 보고서의 핵심 내용 누락, 책임 회피 정황, 그리고 책임자들이 ‘수사 중’을 이유로 징계 없이 복무 중인 충격적인 현실을 폭로했습니다. 다시는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취재하겠다는 취재기자의 결연함은, 기획보도가 갖춰야 할 지속성과 공공성을 명확하게 보여줬습니다.

◇지역 기획보도부문
△지방의원 공약 추적단, 광역의회를 바꾸다 (지방의원 공약 추적단-경기일보·광주일보·영남일보·충청투데이)

지역 기획보도부문에서는 경기일보·광주일보·영남일보·충청투데이 4개 신문사가 공동 기획한 <지방의원 공약 추적단, 광역의회를 바꾸다>가 수상했습니다. 이들은 2022년 당선된 광역의원들의 공약을 공통 및 지역 맞춤형으로 구분해 전수 조사하고, 공약의 의제 편중성과 검증 부실 실태를 체계적으로 파악했습니다.


보도 이후 각 광역의회들이 개별 공약 공개 페이지 신설을 검토하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약서 제출 의무화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내는 등 제도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지방자치의 진정한 시작은 지역 권력에 대한 지역 언론의 날카로운 감시와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에 있음을 이번 연대 기획이 완벽하게 입증했습니다. 앞으로 활약을 기대합니다.

◇제16회 조계창 국제보도상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2명 인터뷰 (조선일보 정철환 기자)

제16회 조계창 국제보도상의 영예를 안은 조선일보의 <러시아 파병 북한군 포로 2명 인터뷰>는 국제 보도의 지평을 넓힌 전무후무한 기사입니다. 전쟁이 격화되는 극도의 혼란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우크라이나 고위 인사를 끈질기게 접촉해 성사시킨 이 인터뷰는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조차 해내지 못한 높은 취재 난도를 극복한 기념비적 성과입니다. ‘한국의 시각’과 ‘우리말 육성’으로 전장의 실상을 전달했다는 점은 한국 언론 국제보도의 가능성과 책무를 동시에 환기한 놀라운 쾌거입니다.

제57회 한국기자상에 출품된 수많은 보도들은 저마다의 치열함과 절실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경고한 공론장의 상업적 식민화와 여론 조작의 위험이 극에 달한 오늘날, 저널리즘은 ‘처음 말하는 능력’ 못지않게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팩트를 찾아내어 ‘완벽하게 증명하는 능력’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지적한 ‘검증의 규율’을 몸소 실천하며 진실의 탐조등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낸 현장 기자 여러분의 땀방울에서 한국 언론이 결코 시들지 않을 강력한 희망을 봅니다.


이번에 영예로운 상을 안으신 수상자분과 그 뒤에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데스크·취재 구성원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와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사회의 가장 소외된 어둠을 밝히고, 부당한 권력의 민낯을 가차 없이 들춰내는 여러분의 날 선 펜이 결코 무뎌지지 않기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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