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7일 오전 제주, 전국의 언론사 사건팀 기자 등 70여명이 ‘카페 아이갓에브리씽’ 제주도청점을 찾았다. 제주도청 민원실 옆 정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이 카페는 바리스타 등 중증장애인 7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고민수씨는 지난해 전국 장애인 바리스타 대회에서 1위를 거머쥔 실력자이기도 하다. 중증장애인 자립 기반 마련과 사회 참여 기회 확대를 위한 한국장애인개발원 지원사업인 아이갓에브리씽은 현재 정부세종청사, 용산 대통령실 등 전국 86개 지점에서 운영되고 있다.
5일부터 진행된 한국기자협회 주최 ‘2025 사건기자 세미나’에 참가한 기자들은 사흘째인 이날 한국장애인개발원 관계자들과 함께 제주에 있는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을 둘러봤다. 아이갓에브리씽에 이어 제주시 구산동에 있는 발달장애인 70명이 일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도 방문했다. 장애인 부모의 가장 큰 고민인 성인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자활을 위해 설립된 희망나래는 인쇄물, 쇼핑백, 판촉물 인쇄 등 생산시설 사업과 제과제빵, 이동스팀세차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희망나래 건물 안 발달장애인이 운영하는 ‘제로점빵’은 플라스틱 병뚜껑을 녹여 만든 키링, 폐현수막을 활용한 에코백 등이 대표 상품이다. 이날 제로점빵 가게를 둘러보던 주현정 광주MBC 기자는 제주MBC가 쓰여 있는 현수막 에코백을 발견하곤 “곧 전국MBC 기자 모임이 있는데 동료들에게 주겠다”며 가방 2개를 사가기도 했다.
장애인 복지에 관심 많은 큰 기자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이날 박인향 희망나래일터 원장에게 여러 질문을 했던 문준영 시사IN 기자는 “최근 ‘발달장애인 학교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썼다. 여러 장애인 부모를 만났는데 사실 학교 졸업 이후가 더 문제라고 걱정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자식들의 일자리, 밥벌이였다”며 “제주에선 장애인 일자리가 어느 정도인지, 사업 규모 등을 여쭤봤다. 장애인 일자리 관련 보도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전날인 6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진행된 세미나에선 기자들이 장애인 관련 보도를 할 때 장애인을 단순히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극복의 서사만을 다루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 생활인으로서 다뤄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보건복지부를 출입하고 있는 남수현 중앙일보 기자는 “한국 언론의 장애인 보도를 보면 벙어리, 정신병 등 명백한 차별적 표현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지만 언론이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선 여전히 기자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이 많이 깔려 있다고 본다. 가장 대표적인 건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시선”이라며 “장애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 되는 대상으로 묘사를 하게 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살아가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장벽에 대한 문제는 잘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남 기자는 미국 NCDJ(국립 장애 및 저널리즘센터)의 ‘기사에 장애를 언급할 때는 반드시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때만 하라’는 기본 지침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사건의 본질이 장애와 무관하다면 굳이 언급을 하지 말라는 건데, 장애를 부각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영웅 서사 맥락에서 극대화한다든지 동정의 대상이나 위험한 대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 사건 맥락에서도 원인이 장애가 아닌데도 부각시킨다면 차별적인 시선이 퍼질 수 있어 기자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한번 던져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마련 중인 ‘장애인 보도 세부 권고 기준안’에 대한 소개도 이뤄졌다. △장애인의 인격권과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 △취재 보도 시 장애인의 여건을 고려하고 개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론은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개선하고 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등의 내용으로 항목이 구성될 예정이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유현재 서강대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주요 항목 아래엔 세부 권고 내용을 채우고 있다. 예를 들면 ‘모든 보도에선 사람을 먼저 존중하는 인간 중심 언어를 쓰자’ 등이 있다. 호의적 차별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기도 했다”며 “또 기자들에게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휠체어 장애인)와 ‘권장하는 용어’(휠체어 사용자)를 정리해 같이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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